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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소리
  • 신경의 형성
  • 프랜시스 영
  • 12,600원 (10%700)
  • 2022-03-30
  • : 452

그리스도교는 “교회 안팎의 도전”에 맞서며 신경을 형성하였다. 이 과정은 그리스·로마의 다신교와 유일신 신앙을 물려준 유대교 사이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명료화하는 과정이었다. 신경을 둘러싼 논쟁이 ‘정통’과 ‘이단’을 가르고 교회의 분열을 초래하였음에도 불 구하고 계속되었던 이유는 그것이 교회와 신자들의 구원과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었다.


프랜시스 영의 『신경의 형성』(The making of the Creeds, 1991)은 앨런 리처드슨의 『신경의 형성』(Creeds in the Making, 1935)의 속편으로 50여 년 사이에 이 주제에 관해 변화된 관점을 반영한 입문서이다. 앨런 리처드슨과 달리 프랜시스 영은 그리스도인들의 경험과 분리된 ‘사실’을 찾고자 하지 않으며, 신경을 신앙에 관한 ‘이차적’ 설명으로 간주하지도 않는 다. 신경의 형성은 삼위 하느님에 대한 ‘송영’에서 기원한 것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한 예수, 부활을 이해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었다. 더 나아가 영지주의, 그리스·로마 종교와 같은 외부의 도전과 내부 ‘이단’에 맞서는 정치적 쟁투의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도교는 공동체 내 권위자, 진리를 판단할 근거가 필요하다는 실재적 요구에 의해 ‘정통의 시금석’으로서의 신경을 형성해야 하였다.


교회가 처음 마주한 도전은 창조에 관한 것이었다. 물질세계를 격하시키며 성육신을 부정하는 영지주의, 물질세계가 ‘제2 원리’인 ‘질료’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그리스·로마 철학에 비추어 그리스도교는 창조 교리를 가다듬어야 했다. ‘한 분 하느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라는 신경의 첫 조항은 영지주의를 배격하고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를 고안함으로써 전능한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진 선한 세계를 변호하는 것이었다. 교회가 마주한 또 다른 도전은 “하느님과 그리스도 모두에게 예배하는 것”, 즉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였다. 그리스도교는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스토아 철학의 ‘로고스’ 개념을 활용하였다. 유스티누스의 ‘로고스 신학’을 이어받아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중재자’라고 변론하였고,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의 논변을 거쳐 최종적으로 니케아 신경에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동일본질’이라고 고백하게 되었다. 이처럼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로마의 다신교,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명료화하였다.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명료화되기까지의 과정, 그 중심에는 ‘구원’의 문제가 있었다. 당시 “교회생활의 중심에는 구원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교회는 이 구원을 감지하고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어떻게 다자가 궁극적인 일자와 연결될 수 있는가’, 어떻게 ‘한 분 하느님과 한 분 주님을 섬길 수 있는가’, 성령은 ‘성부로부터 나오는가, 성부와 성자 모두에게서 나오는가’, 나아가 ‘교회 밖에도 구원은 있는가’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신경은 ‘이 세계’를 거부하지 않고 “하느님이 이 지상의 통치자가 되시며 그분의 나라가 회복될 것이라는” 그리스도교의 구원론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형성되었다. 신경의 첫 조항은 하느님께서 ‘재-창조’ 혹은 회복시키실 ‘이 세계’를 긍정하는 것이었으며, 아타나시우스가 아리우스를 반박하였던 까닭은 로고스가 “본질상 하느님의 아들”이어야만 “우리가 그분과 같이 될 수 있도록 그분은 우리와 같은 존재가 되”신 ‘재-창조’로서의 구원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전수해온 삼위 하느님에 대한 ‘송영’ 또는 ‘고백’은 그리스·로마의 종교와 ‘이단’과의 논쟁 속에서 ‘정통의 시금석’인 신경이 되었다. 프랜시스 영은 교회 안과 밖, 교회 내부 ‘정통’과 ‘이단’ 사이의 논쟁을 중요하게 다루면서도 이 과정 전반에 신자들의 구원, ‘이 세계’의 회복이 놓여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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