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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소리
  • 발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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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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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 복잡성과 문화적 복합성 속에서 여러 종족집단이 느슨하게 공존해오던 발칸에서는 19세기에 외세의 영향을 받으며 ‘발칸화’가 진행되었다. 발칸의 각 민족이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여러 나라로 분립된 발칸화는 오스만제국의 지배력이 약화됨에 따라 배타적 민족주의가 분출되고 외세가 개입하며 촉발된 ‘동방문제’로부터 비롯되었다. ‘국민’이라는 정체성과 ‘국가종교’로 구성되는 국민국가 체제의 발칸 국가들이 자행한 “폭력과 야만”의 원인은 더 넓은 맥락에 포함된 것이었으므로 발칸 고유의 것만은 아니었다.


발칸 반도는 외부의 침입을 막아주는 산맥이 없어 외부의 침입에 취약하였고, 내부 지형은 복잡하여 교통망을 정비하기도 쉽지 않았기에 주민들은 주로 ‘마을’을 중심으로 살아갔다. “유럽의 터키”라고 불리던 이 지역은 19세기 무렵부터 발칸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이 시기 부여된 지명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발칸에는 “지리적 개념 그 이상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오스만제국이 “미증유의 종교적 관용”을 실천하여 기독교도를 ‘짐미’(zimmi, 보호받는 민족)로 인정하였다는 사실은 서유럽인 기독교도들의 편견이나 발칸의 “민족주의적 애국자들의 자손들”이 쓴 역사와 달리 이 지역에서 다양한 민족, 문화, 종교가 공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마케도니아의 농부들이 “우리는 성모 마리아를 믿는 무슬림입니다.”라고 고백하였듯이 발칸 사람들에게 종교는 “공유 자원”이었고 언어의 경계는 불분명했다.


오래된 공존은 “오스만제국 와해와 민족주의 분출이라는 이같은 예측불허의 일들을 국제적으로 처리하는 과정”, 즉 ‘동방문제’가 등장하면서 깨지게 된다. 동방문제는 오스만제국의 지배력이 토착지주층의 형성과 예니체리의 반란을 겪으며 흔들리자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세력확장을 노리던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및 이들을 견제하는 외세가 발칸에 개입하면서 발생하였다. 이는 “민족성의 구분에 따라 국가를 새로 건설”하여 발칸 각지가 분립되는 발칸화로 이어지게 되었다. 세르비아는 1878년 베를린회의에서 독립이 결정되었고, 같은 정교회 국가였던 러시아의 원조를 받지 못하여 실패한 그리스의 독립 시도는 이후 두 번째 봉기에 이르러 “국제적 힘의 균형”이 변화함에 따라 외세의 원조에 힘입어 성공하였다. 루마니아의 독립은 러시아를 견제하고 ‘발칸의 파리’를 만들고자 한 프랑스의 개입 덕분이었다. ‘민족국가의 건설’이라고는 하지만 이처럼 외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독립은 언제든지 외세에 따라 흔들릴 수 있는 것이었다.


민족적 동질성을 근간으로 하는 국민국가 체제는 마을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발칸 사람들에게 특정한 종교를 믿고 특정한 언어를 사용하는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하였다. 여기서 소수민족 문제가 비롯되었는데, “불가리아, 그리스, 보스니아의 무슬림과 루마니아의 헝가리인”과 같은 주민들은 소수민족으로서 다수 민족의 언어를 익히거나 개종을 해야 했다. 언어의 경계는 뚜렷해졌고 종교는 더 이상 “공유 자원”이 아니었다. 소수민족 문제와 같이 나타난 문제가 영토회복주의였다. 그리스의 대그리스주의와 불가리아의 산스테파노 불가리아에 대한 향수는 발칸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동방문제에서부터 발칸화로 이어지는 “발칸의 국가 건설 투쟁”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잠시 봉합되었다가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지만 발칸은 “국제 경제”라는 또 다른 형태로 외세의 위협을 마주하게 되었다.


폭력과 야만, ‘유럽의 화약고’라는 발칸에 대한 심상은 19세기 이후 외세의 개입으로부터 기인한 바가 상당히 크다. 19세기 이전 “다채로움” 속에서 느슨하게 공존하던 ‘국가 성립 이전의 발칸’과 ‘국가 건설’ 이후 발칸의 대조적인 모습에서 ‘국민국가’라는 구조물에 내재된 배타성과 폭력성을 보게된다. ‘국가 성립 이전의 발칸’을 지배한 오스만제국의 지배체제에 대해서는 오가사와라 히로유키의 《오스만 제국》을, ‘국가 건설’ 이후의 발칸이 어떻게 제1차 세계대전(유럽대전)으로 얽혀드는지에 대해서는 크리스토퍼 클라크의 《몽유병자들》을 읽음으로써 그 특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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