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복음서는 예수의 생애를 전달하며 특징적인 그리스도론을 전개한다. 각 복음서의 그리스도론은 각 공동체의 특징적인 신학의 산물이자 복음서를 통해서 교회를 지도하고자 한 교회정치학의 산물이다. 게르트 타이센은 ‘사회-수사학적 접근’을 활용하여 네 복음서가 수행하는 교회정치학이라는 사회적 기능과 복음서에 반영된 ‘삶의 정황’을 탐색한다.
리처드A.버릿지에 따르면 복음서는 ‘전기’다. 슈미트와 불트만 같은 학자들은 복음서를 “대중적인 민속문학,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 모음”이라고 주장하였지만 리처드A.버릿지는 복음서와 그리스-로마 전기와의 유사성으로 미루어 보아 복음서는 예수의 생애를 전달하는 전기라고 주장한다. 복음서 저자들은 ‘방랑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이 남긴 예수 전승(Q)을 바탕으로 하여 ‘지역 공동체’에 적합한 형태로 복음서를 저술하였다. 이들은 복음서를 통하여 각 공동체 고유의 신앙을 해명하는 그리스도론을 전개하는데, 여기에는 각 공동체의 ‘삶의 정황’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학자들은 복음서 연구를 위해서 “복음서 이야기를 그 ‘양식’에 따라 분석한” 양식 비평과 동일한 이야기를 어떻게 편집하고 해석하였는지 분석하는 편집 비평이라는 방식을 활용하였다.
게르트 타이센이 시도하는 방식은 ‘사회-수사학적 접근’이다. 게르트 타이센에 따르면 복음서의 저자는 단순히 ‘전승의 전달자’도 ‘독창적인 신학자’도 아니라 공동체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고 “복음서를 통해 1세기 공동체의 일상적 삶을 위하여 성서적인 기초를 만들고자” 하였던, 즉 교회정치학을 실현했던 공동체의 지도자이다. 교회정치학의 과제는 다음 다섯 가지이다. 첫째, 공동체의 신념과 전승에 일치하는 예수상을 창조하여 공동체 내의 합의를 만들어내고, 공동체의 예수상을 정당화시키는 것. 둘째, 주변 세계(로마 제국)와의 관계에서 특정한 방향성을 제공하는 것. 셋째, 모종교인 유대교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 넷째, 공동체 내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 다섯째, 공동체 내의 권위 구조를 형성하는 것. 이렇게 볼 때 복음서는 한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복음서 기자와 공동체 사이에 일어난 상호작용의 산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복음서 내에서 교회정치학이 어떻게 수행되는지 마가복음서를 통해서 살펴보자. 마가복음서가 기록되던 70년경은 로마 제국의 혼란기였다. 제국의 혼란기에 새로 즉위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자신의 즉위를 정당화하는 선전을 벌였다. 마가복음서는 바로 이 시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선언하며 ‘섬기는 왕’에 의한 ‘반-복음’을 제시한다. 복음서를 저술하는 과정은 공동체 내의 모순되는 전승을 통합하여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마가 기자는 예수의 ‘기적 이야기’와 ‘수난 이야기’를 ‘복음’이라는 표제어 아래 통합시켰고, 이 ‘복음’은 마가복음서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비밀 모티프’를 덧붙여 이 통합을 정당화하였다. 한편, 유대교의 성전이 파괴되자 그리스도인들은 세례와 성찬식이라는 독자적인 제의를 만들어냈는데, 마가복음서는 예수가 죽었을 때 성소의 휘장이 둘로 찢어졌다는 전승을 덧붙이며 성전 중심의 제의가 종결되었음을 보여주며 이 새로운 제의를 정당화한다.
이처럼 복음서는 특정한 컨텍스트에서 형성되어 다시 컨텍스트와 상호작용하며 교회정치학이라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게르트 타이센의 ‘사회-수사학적 접근’은 텍스트가 내용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텍스트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힌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각 복음서의 토대가 되는 공동체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직접 복음서를 음미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