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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
  • 이기호
  • 16,200원 (10%↓900)
  • 2026-10-16
  • : 9,280

 이기호 작가님의 단편은 처음이다. 팩트와 픽션이 적절하게 섞인 자전적 소설집이라 할 수 있겠다. 읽으면서 올해 읽었던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가 떠올랐다. 작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비슷한 인상을 받았지만, 두 작품에 대한 감상은 사뭇 달랐다. 『가녀장의 시대』가 작가의 일상을 에세이처럼 보여주는 데 가까웠다면,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는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각 단편마다 뚜렷한 서사와 다채로운 인물들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 좋았다.

 수록된 단편들은 작가인 주인공의 교수 생활과 북토크, 병원과 창작촌 생활 등을 다룬다. 각각은 교수와 학생의 관계, 작가와 독자의 관계, 고립된 생활 속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골목에서 우연히 누군가를 보게 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담백한 에세이처럼 쉽게 읽히는, 부담 없는 단편들이었다.

 표제작인 「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 」 는 독특하다. 일단 처음 이 형식을 보면서, 과연 이게 소설일 수 있나,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일개 독자인 나는 일단 끝까지 읽고 판단하자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올해 내가 꽤나 자주 생각했던 것과 이야기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었다.

 사담이지만, 올해 혼자 이런저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한국 문단이라는 곳은 과연 공평한 곳인지 궁금해졌다. 문학을 공부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문학 작품을 발표하고 작가로 인정받는 과정에는 작품 자체 외에 다른 요소들도 작용하지 않을까. 문학 역시 책을 판매하고 독자를 확보해야 하는 산업의 일부라면, 그 안에서도 다른 조직과 마찬가지로 학연이나 인맥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폐쇄성과 작품 속 인물이 바라보는 폐쇄성이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문학과 예술을 둘러싼 세계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열려 있는가 하는 질문만큼은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무엇보다 이런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현실의 문제를 직접 주장하는 글이었다면 그 주장에 얼마나 동의하는지를 먼저 따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가 스스로 그 문제를 생각하게 했다. 쉽게 읽히면서도 강력한 설득력을 갖는다는 점이 놀라웠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물론, 한국 문단을 사랑하는 독자들이라면 꼭 한 번쯤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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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교수님. 불안이라는 게 말이에요. 이게 짙어지면 그게 혐오로 가는 건데……."

그러니까 내 말은 그 상태로는 아무런 글도 쓸 수 없다, 그때 쓰는 글들은 다 쓰레기다. 운운. 나는 그 뒤로도 무슨 말인가를 더 했는데 기억에 남은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다만, 호프집을 나서기 직전 C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 "이교수님, 하지만 혐오는 자기 자신을 잘 모를 때 찾아오기도 하는 거거든요"라던 말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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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게 된 후로 나는 줄곧 감정에 대해서 생각해왔는데, 그것들은 주로 분노나 수치, 혐오와 죄책감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누군가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어렵고 고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왔고 또 그런 글들을 써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때때로 그것들이 그저 내 안에서만 해결되고 마는 감정은 아닐까, 의심이 들 때가 많았다. 누군가의 불쾌와 부끄러움을 그저 이해하고 헤아리는 일.


헤아리고 나면 무엇이 변하는가?

마음만 흘러넘치면 그다음엔 무엇이 오는가?

나는 그게 더 큰 거짓말이라는 생각을 지울 길 없었다.



「 마음은 언제 휘어지는가 」

| 오래전 나에게 비트코인 투자를 권유했던 '나'의 제자 '성우정'. 나는 작가이자 교수다. 어느 날부터 끊임없이 오는 발신자 표시 제한 전화와 욕설이 가득한 문자를 받게 되고, 이 근원지를 찾아보니 제자가 있었다. 나는 이 제자와의 마지막을 톺아보며 이유를 찾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감정과 마음이 언제 휘어지는지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


"작가님이 뭔가 좀 오해하시는 거 같은데요. 저는 작가님뿐만 아니라 한국문학 전체가 다 그렇다는 거예요. 다 거기서 거기인 자기 이야기들뿐이고…… 다 같은 계급에서 자라서 그런가? 생활도 엇비슷한 거 같고……."

야아, 계급 이야기까지 나오는구나. 저는 비아냥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런 작품들이 비평가들한테 호평받는 거 같고…… 하긴, 우리나라엔 가난한 집 출신 비평가는 아예 없겠네요. 다들 대학원까지 나오셔야 했을 테니까."

박선생의 어조엔 어쩐지 유리 알갱이 같은 것이 묻어 있었는데,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 여자는 원래 파이터인가? 그래서 추리닝을 입고 온 것일까?

"무슨 본드처럼 자기들끼리만 끈끈한 거 같아요. 자기들끼리만 이해해 주고 안아주고 다정하고."


/


"윤리라는 게 있어요."

모두가 다시 제 말에 집중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소리를 조금 더 낮게 깔았습니다.

"제가 아닌 누군가를 함부로 쓸 순 없다는 윤리 같은 거요." 깜빡깜빡.

"제가 뭐라고 누구를 대변하고 누구의 마음을 대신 쓸 수 있겠어요? 그러다 보니 제 이야기에 집중하는 건데……"

"저는 그게 비겁하다는 거예요." 박선생이 또 제 말을 끊고 나섰습니다.

아이 씨, 진짜.

"그러려면 왜 소설을 쓰죠? 그냥 에세이를 쓰면 되죠."

"저는!"

그때,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저는, 저는 그것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젊은 유령은 어떻게 말하는가 」

| 모객이 안된 북토크를 가게 된 작가인 '나'는 독자인 '박선생'을 만난다. 요즘 소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듣게 된다. 북토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에서 북토크 참석자 중 한 명이었던 '유령'이 차 뒷자리에 앉아있는 걸 발견한다.

'나'는 유령을 떼어낼 방법을 찾다가 우연히 다시 ’박선생‘을 만나고 다시 이야기를 나눈다.



아니, 그것은 정확한 답변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냥 '원인'이었을 뿐, '이유'는 아니었다. 우리는 종종 원인과 이유를 뒤섞는다. 원인이 결과와 연결된 입장이라면. 이유는 그 시작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래서 원인은 보통 '~이어서' 와 연결되고, 이유는 '~이니까'와 이어진다. '아일랜드를 가지 못해서 연희문학창작촌에 입주했다'와 '아일랜드를 가지 못했으니까 연희문학창작촌에 입주했다'는 엄연히 다른 의미였다. 문제는 내가 이유를 잘 찾지 못해서 자꾸 손쉽게 원인을 바라보고, 그것을 이유라고 스스로 생각한다는 데 있었다. 이유는 다른 이유와 또 다른 이유와 더 많은 이유를 부르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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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에서 신문 배달 오토바이가 그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신문 배달부는 헬멧을 쓰고 토시를 낀 차림이었는데, 솜씨 좋게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론 휙휙 대문 안으로 정확하게 신문을 집어던지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신문 배달부가 그 골목을 다 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된 것이다. 그의 집 앞에 도착한 신문 배달부는, 다른 집처럼 신문을 집어던지지 않았다. 그는 아예 오토바이를 세우고 내려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전두환의 집 대문 아래로 신문을 밀어 넣었다. 그러곤 허리를 숙여 인사까지 했다! 그 모든 동작은 마치 어떤 요가의 연결 동작처럼 자연스러워 보였고, 하나로 이어져 있었으며 또 숙련되어 있었다.



「 어두운 골목길을 배회하는 자, 누구인가 」

| 새 소설을 위해 취재차 출국하려던 작가인 '나'는 코로나로 인해 여행 계획이 무산되자, 연희문학창작촌에 입주하게 된다. 방해하는 요소들이 사라지면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나는 좀처럼 글을 쓰지 못한다. 새벽 시간 산책에 나선 나는 한 노인과 마주치고, 그 노인은 전두환이라고 확신한다. 그를 다시 한번 마주치기 위해 매일같이 산책을 나가지만 만나지 못한다.



근데, 그러니까 누구 말처럼 나도 자꾸 그런 제도에 연루되는 기분이에요. 침묵하고 못 본 척하고 눈 감고 있으면 되는데, 그러면 개인적으론 아무 문제 없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새 기성세대가 되어 있고, 그 제도에 동참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거죠. 그런 침묵과 귀찮음 사이에서 예술원이라는 제도가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자리 잡은 거 고요…… 이거 좀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다들 아무 문제 없다고 느끼는 건가요? 나는요, 글을 쓰면요…… 그래도 내가 세계 속에서 혼자 있는 게 아니구나, 위로받을 때가 많거든요…… 한데, 이런 말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어째 더 혼자가 된 기분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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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전공한다는 이유로 그런 지원에서 배제되는 것도 저는 이상하게 느껴져요. 소상공인 지원이나 자영업자 지원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문학에 대해 지원하는 건 영 못마땅하게 여기는 태도 같은 거요. 그런 게 분명 존재한다는 거죠. 그게 예술을 삶과 괴리시키고, 예술을 특수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런 관점에서 예술원을 바라보면…… 다른 분야는 소득 하위 70퍼센트에 지원하는 걸 문학은 상위 1퍼센트에만 공적 자금을 지원하는 꼴인 거죠. 좀 더 면밀하고 정확한 인식이 필요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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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저는 좀 이해가 안 됐거든요. 원래 작가들은 글 쓰는 분들이 아닌가요? 어찌 된 게 제가 만나본 작가들은 글은 하나도 안 쓰고······ 다 정치만 하고 있거든요. 그것도 아주 치열하게.



「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 」

| 대한민국예술원이 지닌 문제점과 대응 방안을 보고서 형식의 소설이다. 설립 배경과 현재 운영되고 있는 회원 선출 방식과 예산 항목 등을 해외 예술원과 비교하며 제언을 덧붙인다. 이 소설은 실제 2021년 발표되었고, 이는 국민청원과 작가와 예술가들의 공동 성명으로 이어지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어떤가를 또 생각하게 하는 소설.



K는 그러면서 나는 이제 싸울 수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거 같아,라고 자조했다. 싸우는 일도 다 능력 있는 사람들의 몫이 되어버린 거 아니냐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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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 경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이 놓였는가? 아니, 나는 그러지 못했다. 계속 명치에 찜찜한 기운이 남았고, 글을 쓰는 K와 내가 다 끔찍하게 여겨졌다.

"어디서나 다 돈 얘기들뿐이지."

나는 낮게 중얼거렸다.

"다 똑같은 소작농이야."



「 우리는 왜 엉망이 되어가는가 」

| 위의 단편 발표 후, 문화체육관광부의 간담회에 참석하게 된 작가인 '나'는 준비한 말은 꺼내보지도 못한 채 간담회를 마친다. 해당 지역에 살고 있던 소설가 'K'에게 연락했고, 현재는 귀향해 포도밭을 일구는 K를 만나러 간다. 지난한 예술가, 그러니까 작가들의 삶과 갈등, 한계를 절감하게 되는 소설.



숫기. 그러니까 그 말엔 '어린 마음'이라는 뜻도 있겠지. '숫'은 새끼를 배지 않거나 열매를 맺지 않은 존재를 뜻하기도 하니. 휴대폰으로 그 단어를 검색하며 호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나에겐 그 마음이 없었던 거겠지. 그걸 사람들은 알아본 거겠지.

호진은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을 맞췄다. 개는 무표정한 얼굴로 호진을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어린 개, 어린 마음이 곁에 있었다.



「 숫기란 무엇인가 」

| 줄곧 '숫기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호진'. 시골마을에 집을 지으려고 돈을 모았고, 막상 터를 잡으려니 시골의 텃세가 두려웠던 호진은 집 마당에 자꾸 나타나는 개 때문에 애를 먹는다. 개를 만나 숫기란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짧은 단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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