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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르고스
  • 이승형
  • 15,120원 (10%840)
  • 2026-08-30
  • : 13,060
제 3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통해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접했었다. 최진영 작가의 소설 중 단연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은 여느 문학상 중에서도 눈여겨 보는 편이다.


소설은 실재하는 곳, 김해 대성동 고분군을 배경으로 그려진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모두가 잠들어 있는 무덤과, 바로 옆에 아무도 잠들지 않는 물류센터가 자리한 곳. 이 기이한 대조가 흥미를 끈다. 주인공 정재일은 강남에서 프리미엄 에스테틱 클리닉을 운영하던 의사였으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빚을 지고 김해로 도피한다. 그는 물류센터 야간 구급대원으로 일하면서 잠을 자지 않고 일하는 노동자들을 발견하고, 빚을 갚기 위해 그들을 이용하기로 결심한다.

제목인 ‘아르고스’는 요즘 한창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100개의 눈을 가진 거인이자, 이 소설에서는 물류센터 전체를 관리하는 AI 관제 시스템이다. 아르고스는 노동자들의 기분이나 상태를 무시한 채 오직 작업량과 속도 향상을 목표로 시스템을 운영한다. 로봇이기 때문에 납득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잠을 팔아 돈을 버는 야간 근무자들과, 그들의 피를 이용해 혈청을 만들려는 주인공은? 소설은 감정 없이 생산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아르고스만 비난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감정이 있는 인간 역시 같은 도마 위에 올린다. 누가 더 비난받아 마땅한가를 자꾸 생각하게 됐다.

물류센터의 벽이 무너지면서 쓸려 들어온 뼈와 두개골을 로봇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무게로 분류해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가야 시대 수장급 인물이었던 사람들의 유골과 토기 파편, 옥구슬이 택배 상자들과 함께 분류되는 모습. '로봇은 뼈와 상자를 구분하지 못했다. 700그램은 700그램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선명한 메시지가 아닐까. 로봇과 AI가 인간과 다른 지점을 적확하게 보여준다. 자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감염된 야간 근무자들은 로봇처럼 일하면서도 대퇴골과 택배 상자는 구분했을 것이다. 기술은 발전하고 점점 정교해지겠지만, 아직까지 인간이 필요한 이유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소설은 실재하는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의학적인 부분이나 물류센터의 묘사에서도 꽤 구체적인 설명과 데이터를 제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쉬운 점도 있었다. 강남에서 클리닉을 운영하던 의사가 빚 3억 원 때문에 김해에 내려가 신분을 숨기고 물류센터 구급대원으로 일하는 것, 물류센터에서 눈에 띄게 나타나는 이 현상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오직 두 명뿐이라는 것, 물류센터 내의 거의 모든 장비를 고칠 수 있는 엄청난 기술자인 수아가 그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 등 현실적인 배경과 데이터에 비해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 설정이 아쉬웠다. 물론 소설적 허용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또한 이 작품에서는 하나의 감정이나 상황을 두세 개의 문장으로 나누어 다시 말하는 방식이 유독 자주 등장했다. 처음에는 작가의 문체적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방식의 문장이 거듭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보다 문장의 배열을 먼저 의식하게 됐다.
이를테면, '그런데 나는 맑았다. 머리가 맑았다. 시야가 선명했다. 휴대전화 화면의 글자가 또렷하게 보였다.'거나, '감정이 흐릿했다. 윤곽이 없었다. 안개처럼' 같은 문장들.
물론 이러한 반복이 다른 독자들에게는 감정을 충분히 느끼게 하는 리듬으로 읽힐 수도 있겠다. 하나의 감정을 여러 각도에서 되짚는 방식은 그 감정을 강조하는 데 효과적일 수도 있다. 다만 나에게는 그 반복이 오히려 '이 감정은 이렇게 느껴야 해'라고 제시하는 것처럼 느껴져 감정의 여백을 좁혔다.


이제 AI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소설이 묻는 것은 AI가 인간처럼 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쉽게 AI처럼 될 수 있는가에 가까웠다. 잠들지 않고 일하고, 사람의 상태보다 생산성과 효율을 우선하고, 결국 사람마저 숫자로 환원하는 것. 이 이야기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 이유다.

실제 야간 근무자처럼 야간에 읽었다. 주말 이틀동안 새벽에 쑥쑥 읽어내린 책. 책을 다 읽고 잠에 들었고, 꿈을 꿨다. 안도했다. (읽은 사람들은 몬말인지 알지)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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