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 도서제공
가끔 어떤 날, 사소한 한 가지 선택이 큰 영향을 미칠 때가 있다. 최근에는 이 책을 읽기로 한 결정이 그랬다. 6개월 동안 운동을 하지 않던 내가 망설임 없이 바지만 갈아입고 밖으로 뛰쳐나갔으니까.
서평단을 신청하면서도 달리기, 그러니까 요즘 유행하는 러닝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고, 관심조차 없으면서 괜찮을까 망설였다. 단지, 올해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같은 이야기 정도라면 읽고 싶은 가벼운 마음이었다. 이 책은 달리기를 7명의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올드팝, 함께 달리는 친구,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도망으로서의 달리기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가 깊이 빠져버린 책이었다.
특히 내가 읽다가 뛰쳐 나갔던 글은 윤이나 작가의 「달리는 건 도망이지만 도움이 된다」였다. 하반기에 정리할 일들, 관계와 고민이 뒤섞여서 책을 읽으면서도 집중하지 못하고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을 때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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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10km씩 매주 달린다면 어떻게 될까 과거의 어느 지점, 순간에서 시간의 흐름보다 빠르게, '존나' 멀어진다. 느려지는 시간 속에서 과거를 박차고 나아가 오직 현재만을 통과하는 달리기는 미래를 밀어낸다. 달리는 동안 과거와 멀어지는 동시에 도무지 알 수 없고 대체로 깜깜한 내일에 닿기까지의 시간도 버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자석처럼 끌려가게 되는 나쁜 기억, 내버려 두면 최악의 방향으로 질주하는 상상, 바꿀 수 없는 잘못된 선택이 만든 가상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달렸다. 차오르는 슬픔에서 탈주하기 위해, 불안이 발생시킨 발밑의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멀리로 도달하기 위해 달렸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곱씹을 시간에 달리면, 그 거리만큼 과거의 질문으로부터 튕겨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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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내 사정과 생각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성경 속 계시처럼 나타난 구절이 나를 추동했다. 뛰는 방법은 배울 필요가 없었고, 운동복이야 차고 넘쳤으니까 준비할 게 없었다. 집을 나서자마자 20분을 쉬지 않고 뛰고 멈춰섰을 때, 이마와 가슴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또렷하게 기억 남는다. 이 달리기를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처음 시작한 걸로 충분하다. 이 책은 나에게 충분한 선물이 됐다.
이미 러닝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친구 같은 책이 될 것이다. '당신도 이런 생각을 하며 뛰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달리기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망설이고 있는 사람에게도, 아니면 달리기와 상관없이 마음이 복잡한 사람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어쩌면 책을 덮고 운동화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달리기와 글쓰기는 나를 불만족스럽게 한다. 그건 내가 달리기와 글쓰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더 잘하고 싶기에 늘 불만족의 상태이고 실패의 예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 불만족과 실패는 달리기와 글쓰기를 하는 시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간과 하지 않는 시간, 어느 쪽이 더 만족스러울까? 답은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아직도 이 영화의 주제가를 우연히 들으면 중학교 때 생각이 나니? 나는 네가 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네가 더 좋아졌었어.
달릴 때도 마실 때도 좋은 친구는 나를 꾸며 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겠지. 무리하게 하지 않는 사람, 오늘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
나에게 달리기는 내 인생에 벌어진 특정 사건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분리되는 방법이었다. 거창한 표현을 다 걷어 내고 다시 말하자면, 온 힘을 다해 도망쳤다는 얘기다. 달리는 한, 나는 과거라는 술래에게 절대 잡히지 않는다.
삶에서 비슷한 순간을 아무리 겪어도, 사랑 앞의 나는 좀체 바뀌지 않는다는 것에, 당황하고, 두 눈을 내리깐 채 두려워할 것이라는 것에, 이번에는 아주 약간이라도 더 가볍게 실망할 수 있을까.
내가 매일 살아가는 삶이 힘들게 다가온다면 지금 당장 무엇이 어떻게 힘든지 정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진실로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가 있다면 바로바로 해결해 나가면 된다. 그러나 마땅히 해결할 것도 없는 ‘힘듦‘이라면 그것은 단지 힘들다고 생각하는 나의 그릇된 습관일 뿐이니 그만 벗어던지고 계속 나아가라고, 달리기가 나에게 가르쳐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