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모습을 했지만 사람이 아닌 것
책책책 2026/06/1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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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비인
- 성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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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 2026-06-19

(출판사로부터 일부 가제본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단, 기담집이라고 해서 지레 겁먹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공포영화는 [장화, 홍련]이다. 다행히 귀신이 나오지는 않는다고 했다. 용기 내어본다. 무더운 여름이고, 성해나니까.
가제본으로 3편의 이야기를 먼저 볼 수 있었다. 출간이 기다려진다. 나머지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읽은 성해나 작가 작품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
⌜인비인⌟
무릇 사람이란 자신의 열등을 인정하는 대신 남을 제멋대로 깎아내리는 존재 아니겠습니까.
. 13p
죄를 낳았군.
. 20p
하기야 그것은 팔다리 없이 입만 트인, 비루한 덩어리일 뿐이었으니까요. 어찌 되었든 그날 저는 간만에 단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희디흰 오얏꽃이 하늘에서 팔랑팔랑 떨어지는 기분 좋은 꿈까지 꾸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26p
| 표제작이자, 내가 가장 재밌게 읽은 작품이다. 이야기는 장례식장에 찾아온 낯선 노인이 남긴 편지에서 시작된다. 편지 속에는 전쟁 시기 하얼빈에서 생체 실험과 관련된 연구를 목격하고, 눈과 귀, 팔과 다리가 없는 덩어리 '가타마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숨겨야 마땅한 진실을 고백하는 그의 이야기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어떻게 구분하고, 인간성을 무엇이라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과연 누가 사람이고, 누가 사람이 아닌가. 외형만으로 인간이라 부르기 어려운 존재를 덩어리라 칭하며, 생명을 도구처럼 다루는 것도 모자라 책임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비인간적이라 느껴졌다. 인비인이라는 제목이 인간성의 경계를 끊임없이 흔드는 질문 같았는데, 물론 내 답은 내려졌다.
—
⌜윤회 (당한) 자들⌟
그래요, 샤오잉. 괜찮아요.
맞아요! 스팸 더 드릴까요? 아니면 당면?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나보다 더 불쌍한 애들이 나를 위로하는 걸 듣고 있자니 기가 찼지만, 그래도 계속 듣고 있으니 위안은 안되어도 해소는 되었다. 이상한 신념을 굳게 믿는 걸 깨면 그럭저럭 평범한 애들이었다. 나만큼 힘들고 나 정도로 지치고 나처럼 외로운 애들. 영상의 몇 부분을 크롭했다.
괜찮아요.
그래요, 샤오잉. 괜찮아요.
괜찮아요, 샤오잉.
그 밤 내내 그것을 돌려 들었다.
. 170p
샤오잉, 그대도 보세요. 자미르의 발심이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는지 말입니다.
중학생 말처럼 다들 흐드러진 꽃이나 비가 갠 뒤 뜬 무지개를 보듯 감탄에 젖은 눈으로 굳어가는 시체를 바라보고만 있다. 낙서하는 여자는 울기까지 한다. 부러워, 부러워. 중얼대며.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지만 사실 나도 제정신이 아니긴 마찬가지다. 이 광경을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카메라······ 카메라 어딨지? 였으니까.
. 178p
| 다큐멘터리계의 유망주로 불리던 주인공이 작품의 소재를 찾던 중, 우연히 전생을 기억하며 '윤회를 당한' 사람들이 모인다는 비밀 모임에 잡입하여 일어난 이야기가 담겼다. 사이비 집단처럼 보이는 이 모임에서 계속 이야기되는 것들은 거짓과 믿음, 삶과 죽음, 전생과 현생과 같이 대비되면서도 결국 연결된 것들이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카메라를 찾고, 이 사람들이 미쳤다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이걸 소재로 삼을 생각을 한다. 윤회라는 소재로 이런 이야기를 담아내다니.
—
⌜아미고⌟
맥없이 쓰러진 로봇에게 서둘러 달려갔다. 로봇을 일으켜 세울 때, 그것이 내 귓가에 또박또박 속삭였다.
저 얼굴들을 잘 기억해둬요. 그리울지도 모르잖아요.
…
저들은 모르겠지만, 당신은 무사할 거예요, 아미고
. 231p
얼굴만 남은 로봇과 눈이 마주친다. 그것은 뚝뚝 끊기는 합성음을 내며 더듬더듬 말한다.
당신은…… 무사할 거 야, 아미고.
. 244p
나는 이 삶에 익숙해져 있다. 미끈하고 잡음 없는 삶.
적어도 이곳에 있을 때 나는 평온하다. 하지만…… 알렉사에게 묻는다.
알렉사 너도 무섭니?
알렉사가 악센트 없이 건조하게 답한다.
저는 괜찮습니다.
. 246p
| 주인공은 아침에 일어나 인공지능 비서 알렉사를 통해 스케줄을 전달받고, 자동 주행하는 우버를 타고 촬영장으로 간다. 휴머노이드 로봇 야키마 H1은 스턴트맨을 직업으로 가진 주인공의 스턴트의 역할을 한다.
이야기는 인간과 기계의 역할, 생명의 가치, 그리고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그려낸다. 스마트 면도기가 아닌 이중 날 면도기를 쓰며 '클래식은 위대하니까'라고 말하는 나와, 궐련 담배를 말아피며 '난 정통이 좋더라고'라고 말하는 감독은 결국 필요한 순간에는 기꺼이 휴머노이드 로봇에게 도움을 받고 이용한다. 이 이야기를 읽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엔 인간이 몇이나 될까.'
__
제목인 인비인은 책에 실린 단편의 제목 그러니까 표제작이기도 하지만, 제공받은 3가지 이야기를 모두 아우르는 제목이기도 했다. 포털에 '인비인'을 검색하면 나무위키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의 모습을 했지만 사람이 아닌 것.'
세 편의 이야기 모두에서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의 경계가 분명하고 또 모호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읽은 사람들은 알 수 있다. 물리적으로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과, 독자가 읽으면서 '사람도 아니다'라고 느끼는 것의 대상은 분명 다를 것이다.
박정민 대표님이 그러셨지.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그럼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본다. 책이 어떻게 지루하나. 성해나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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