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과 사랑이 점철된, 세 중국인의 삶
책책책 2025/03/1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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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중국인의 삶
- 다이 시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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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 2025-01-10
: 735
(문학동네 - 해문클럽 이벤트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세 중국인의 삶은, 모두 귀도라는 섬을 배경으로 한 세가지의 단편 소설이 수록된 소설집이다. 실제 귀도라는 곳이 있나 찾아보니 정보가 없다. 소설 속 설정된 귀도라는 곳에 대한 풍경이나, 집이나 교도소와 같은 장소, 물건들을 생동감있게 전해지는 간결하면서 깔끔한 묘사가 정말 좋았다. 귀도라는 섬에 폐가전 제품 재활용장이 들어서고, 그 곳에서 나온 납이나 수은같은 중금속으로 인해 비극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환경 오염 뿐만 아니라, 그 곳에서 살고, 또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치명적인 후유증과 병을 남긴다.
조로증에 걸린 소년의 이야기인 < 호찌민 >, 영화 카사블랑카의 남자 주인공인 보가트가 담배피는 모습과 닮아 보가트로 불리는 저수지 관리인과 납중독된 그의 부인에 대한 이야기 < 저수지의 보가트 >, 중금속 중독으로 미치광이가 되어 쇠사슬에 묶여 생활하는 형을 둔 청년, 그리고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 산을 뚫는 갑옷 >까지. 세가지 소설 모두 간결한 문체로, 중국의 비극적인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 서슴없다.
평소 막연하게 낯설고 어렵다는 느낌이 들어서 중화권의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 편이다. 같은 아시아 국가이면서도, 정치나 경제체제가 달라서인지 쉽게 그 문화나 사회상이 와닿지 않기도 해서 기피했던 것 같다. 중국 뿐만 아니라, 러시아나 중동국가들의 소설도 그랬고..
우선 번역도 아주 매끄럽고,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워서 전혀 어려움없이, 되레 진짜 재밌게 읽었다. 작가의 다른 소설과, 다른 중국 소설도 찾아보고 싶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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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소원을 말하시오."
"벙어리 여인의 두부를 먹고 싶습니다."
/
"수인 번호?"
아이는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9413."
아이의 입술에 너그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아이는 확신했다. 자신이 더 잘할 수 있었다.
< 호찌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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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덕 위에 다시 고요가 돌아왔을 때 네 아버지는 땅에 떨어진 탄피 두 개를 주웠어. 나한테 하나를 주고 하나는 자기가 가졌지. 네 아버진 한 마디도 안 했어. 너도 알다시피 보가트는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잖니. 하지만 나는 그 행동이 마음에 들었어. 그이에게 그 탄피들은 이후 우리를 남편과 아내로 묶어주는 계약의 증인이었던 셈이야."
/
"날 원망하지는 않지?" 그가 물었다. "방법을 생각하느라 너무 몰두해 있었어."
"무슨 방법?"
"3천 위안을 구할 방법. 할머니랑 통화하는 소리 들었어."
< 저수지의 보가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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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중국의 성모마리아>라고 불러야겠다."
그는 이 문장만큼은 전혀 더듬지 않고 똑똑히 발음했다.
/
천산갑이 멸종한 까닭을 이해하려면 중국 전통 의학의 특이한 시적 감수성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박쥐는 어둠 속에서 날아다니므로 박쥐의 똥은 실명에 특효약이 확실하고, 해삼은 남근과 닮았으므로 정력제로 그만이며 해삼을 먹으면 해삼만큼이나 거대한 성기를 갖게 되리라는 것이다. 천산갑의 경우, 중국인들은 산을 뚫는다는 그 동물의 능력에 매료되었다. 깊은 동굴과 어두운 협곡이 자리한 산보다 여인의 몸과 비슷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천산갑 고기를 먹으면 당연히 여인의 신비스러운 동굴을 천산갑만큼이나 깊숙이 파고들 수 있을 것이다.
/
…
녀석을 어미와 함께 묻어주지 못한 게 안타까워. 그 천산갑계의 성모마리아, 몸을 펴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던 그 비늘로 뒤덮인 공은 가건물 안에 묶여 있는 아들을 씻겨주던 우리 어머니의 손만큼이나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
내 그림이 이렇게 극도로 간결해진 건 바로 그래서야."
< 산을 뚫는 갑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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