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경 작가는 말하지 않는다.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저 느끼게 한다. 단순한 몰입감, 흡인력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건 독자를 수동적으로 작가가 이끄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작품들은 독자가 능동적으로 ‘이야기’를 찾아 헤매게끔 만든다. 이러한 경험을 하게 하는 작가나 작품은 그리 흔치 않다. 흔치 않기에 다 읽고 나서 책장을 덮을 즈음, 나는 더욱 반가움에 설렜다. 앞으로 이 작가의 문학적 성장을 독자로서 응원할 수 있다는 것이.
표제작 <색채 그루밍의 세뇌 효과에 대하여>부터 시작해 수많은 시공간을 오가며 마침내 꽃집, ‘푸에고’에 다다르기까지 그 여정은 다채로운 상상력과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흥미진진했다. 무엇보다 앞서 말했듯, 독자가 ‘제 4자’가 되어 작품 속 이야기와 현실의 경계를 걸어가게끔 만드는 작가의 능력이 탁월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나는 그것의 꼬리를 보았다>이다. 근래 읽은 소설들 중 가장 상상력이 넘치는, 동시대적인 작품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AI 혁명이 다가오는 시대, 인간과 기계의 ‘언어’를 놓고 대치(또는 대응)하는 관계, 그에 더해 동화적인 인물과 에피소드까지 더해 얹은 이 소설은 그야말로 ‘언어’의 현존성, 존립 유무에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이외에도 서스펜적인 분위기와 공포를 더한 표제작 <색채 그루밍의 세뇌 효과에 대하여> 역시 거칠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카프카식의 익숙한 설정을 차용한 <마망>은 더 긴 중편이나 장편으로도 만나고 싶었으며 <데니의 얼음동굴>은 2차 창작으로 각색해도 될만큼 신선하고 독특했다.
흔히들 소설을 쓸 때, ‘보여주기(쇼잉)’ 기법을 사용하라고 한다. 설명에 의존하지 말고. 하지만 보여주기도 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독자를 능동케 하는 것. 그 지점을 이시경 작가는 시도하고, 100퍼센트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성공한다. 단순히 소설이 독자에게 질문을 남기는 게 아니라, 독자가 그 질문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게 하는 것이 소설가의 또 다른 영향력이 아닐까. 동시에 이런 좋은 작품들을 발굴한 스토리코스모스에도 신뢰가 더해지는 찰나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