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에는 비극의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과 비극 속에서 길을 개척해나가는 사람들, 가까스로 비극을 비껴가지만 무언가를 상실한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다이빙’과 ‘폭수’, ‘아일랜드’는 아이를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가족을 잃은 고통 속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떠난 이를 기억하며 슬픔을 감내하는 일 뿐이다. 어떤 방식으로도 해소될 수 없는 상실감은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해소되지 못한 채 막을 내린다.
‘서재’와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는 종이책이 금지된 세상에 대한 이야기로, 이 세계에서 모든 지식은 ‘넷(net)’을 통해 공유되고 학습되지만, 방대한 지식이 무한대로 저장되어있는 넷이 채우지 못하는 공백이 존재한다.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는 세상을 되찾기 위해 기약 없는 싸움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한 사람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창작물의 가치와 소중함이었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가까스로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피한 인물인 ‘나’의 이야기이다. 사고 이후로 그는 ‘확률’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그가 성수대교 붕괴와 관련된 소설과 논문을 쓰며 둘 중 어느 하나에 대해서도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길을 잃은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은 그가 « 창문 속이 아니라 그림 밖의 존재. 다리를 다시 짓고, 꽃을 꽂아 둘 수 있는 사람. 추모하지만 결코 영정 속으로는 들어가지 않을 사람 » (201p)이기 때문일 지도 모르지만, 그가 사고를 비껴갔다고 해서 비극까지 비껴갔다고 할 수는 없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게 되었지만 아내와 동업자를 죽이고 도망가는 신세가 된 ‘박’의 이야기 ‘애틀랜틱 엔딩’과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를 잊고 나와 곤란해진 ‘나’의 이야기 ‘어떤 선물’에서도 마찬가지로 곤경에 빠지고 사건에 휘말린 인물들이 서사를 이끌어간다.
불현듯 찾아 든 사건과 불행으로 인해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은 정상궤도를 이탈해 불안정한 비행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어딘지 모를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위태롭게 나아가는 이들의 삶은 낯선 방향으로 흘러간다.
예측불가능한 우리의 삶도 소설 속 인물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비극은 늘 우리 주변에 실재한다. « 흔들리고 요동치는 다리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매순간 다음 걸음을 내딛는 것 뿐이다 » (250p)에 등장한 작가의 말처럼 우리도 마찬가지로 어떤 확률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흔들리는 다리를 건너는 일은 언제나 불안한 일이겠지만, «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다리를 건너고, 새 다리를 짓고, 어떤 다리를 부수며 살아간다 »(250p)는 문장 덕분에 나는 도무지 예견할 수 없는 확률로부터 비롯되는 두려움을 조금은 떨쳐버릴 수 있었다.
꼭 정해진 결말에 도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주는 듯한 여덟 편의 단편소설 덕분에 마음이 여유로워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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