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 '말라바르 언덕의 과부들'은 인도의 여성 변호사 메빈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여성은 법 공부를 할 수 없었고 법정에 설 수도 없었던 시절, 변호사인 아버지 덕분에 법대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사무 변호사가 된다.
이 책은 추리소설이지만 주된 사건이 일어나는 1921년과 메빈이 대학시절 겪은 일들을 보여주는 1916~1917년이 번갈아 나오는 형식을 띠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사건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메빈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환경에서 생활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고 그녀가 살아가는 인도 사회가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문화를 따르고 있는 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배경지식은 1921년 발생하는 사건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인도의 문화와 종교에 대해 잘 알지 못 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이들과 똑같이 법을 공부하고 변호사가 된 그녀가 법정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은 책을 읽는 내내 불쾌감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해 애쓰는 그녀를 무시하는 경찰들의 태도 또한 불편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변호사가 되기 전 겪었던 시련들을 생각하면 분노가 샘솟는다. 이런 찝찝하고 언짢은 감정을 느끼는 건 내가 소설 속 그 당시보다 좀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는 차별의 흔적들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변호사로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그런 시대, 사회 속에서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를 '여성'이 아닌 한 인격체로서 존중해주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건 우리나라 또한 아들이 최고라는 남아 선호 사상이 팽배하던 시기를 관통했기 때문이었다. 먼 타국과 우리가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는, 겪고 있다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나는 왠지모를 유대감을 느꼈다.
메빈이 말라바르 언덕의 과부들과 그 주변인물들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건을 들여다보고 조사해나가는 과정도 무척이나 재미있었지만 한편으로 젠더갈등이 첨예하게 다뤄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이를 주제로 하는 책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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