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사소해서 다들 무고하다
문학동네에서 출판되는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매번 기다리는 편이다. 그야말로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이다. 그야말로 젊고, 신선하고 따끈따근한 작품들을 읽어볼 수 있어서 좋다. 이제 곧 봄이면 2014년 젊은 작가상 수상집이 나올 테니 기대가 된다. 정소현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도 2012년 제 3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였다. 손보미 작가의 <폭우>라는 작품과 김미월 작가의 <프라자호텔>에 나는 그야말로 꽂혀버렸다. 그러다보니 정소현 작가의 <너를 닮은 사람>은 한참 후에나 읽어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바퀴 밑에서 너를 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너는 그 자리에…… "
결말 부분이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너. 현실과 과거 사이를 넘나드는, 불안한 힘이 있었다. 정소현이라는 작가를 그렇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나서 한참 뒤에 나는 정소현 작가의 소설집 『실수하는 인간』을 읽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그때 느꼈던 느낌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품집이었다. 차분한가 싶으면서도 쨍, 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 쨍하는 느낌은 섬뜩함이거나 비밀스러움이거나 괴기스러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누구나 크던 작던 비밀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데 정소현 소설 속 인물들 또한 그 비밀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에서 향하는 것은 모두 가족이다. 엄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 할 것 없이 소설 속에서는 가족들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가족 서사를 띠고 있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가족 안에서 나의 근원, 출생을 찾으려하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하곤 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가족들은 모두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싸대기를 때리거나 등짝을 후려치거나 못생기고 뚱뚱하다며 무시하기도 한다.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슬픔이 없다면 이 소설들도 쓰여질 수 없었겠지만 사실 좀 슬펐다. 나의 근원이다. 그 근원이 무너지고 망가지고 유기된다는 건 내 세상 그 자체가 사라진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슬프고 괴로웠다.
소설의 또 다른 특징 중에서 환상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양장제본서 전기」 와 「돌아오다」는 일종의 환상성을 지니고 있었다. 「지나간 미래」 같은 경우에도 그리 신뢰할 만한 화자는 아니지만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설정 자체가 소설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듯 했다. 「폐쇄되는 도시」 속 도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 작가가 ‘원래 이랬잖아.’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일상이야기를 하듯 양장제본이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사라진 여자의 사진첩에서 나의 사진을 보고, 나 미래를 볼 수 있어, 했다. 그러다보니 나 자신도 뭐 그러려니, 하는 그런 느낌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였고, 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정말 다른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듯했다. 또한 작가가 구축하고 있는 세계, 즉 공간이 소설 속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집’이라는 공간은 어쩌면 가족 서사에서 빠질 수 없는 공간일 것이다. 집, 도서관, 여관, 서울역, 그리고 폐쇄되는 도시까지. ‘나’가 발 딛고 있는 공간들이 ‘나’처럼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문장들도 소설 속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한 몫을 했다. ‘소녀는 내가 잉태된 줄도 모르고 훼스탈 두 알을 활명수와 함께 털어 넣었다. 그러고도 속이 편치 않자 끼니때마다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었다. 그러나 나는 결코 소화되지 않았고, 기어이 태어났다.’ ‘제 의지와는 관계없던 일이지만, 인생을 망쳐드려, 죄송해요.’(「양장제본서 전기」) ‘실수예요, 아버지. 잘 아시잖아요’(「실수하는 인간」) ‘사람들은 바퀴 밑에서 너를 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너는 그 자리에……’ (「너를 닮은 사람」) 등 한편으로는 유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특히 이 작품집을 읽은 친구들의 만장일치로 끔찍한 소설이었던 「이곳에서 얼마나 먼」에서 더욱 그랬다. 끔찍한 것들을 끔찍하게 많이 접해왔지만 이 소설이 더 끔찍하게 느껴졌던 건 나체로 제인과 함께 뒹굴던 아버지의 모습도 아니고 제인의 나체 사진들도 아니었다. 그저 제인이 있다는 음식점에 간 화자가 거대한 몸집을 한 여자를 바라보다 계산대로 향하는 부분에서 그 여자가 내뱉은 대사였다. ‘잘 사는 것 같아 다행이야. 나도 잘 살고 있으니까 다시는 오지마라. 이걸로 내 빚은 청산 한 거야.’ 쨍, 하고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사실 정소현 작가의 소설집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작품들이 다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족 이야기, 유년기의 학대, 가출과 유괴, 부모와의 갈등……. 그다지 신선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다지 충격적이지도 않은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사실대로 말하면 몇 작품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폐쇄되는 도시」 같은 경우 잘 읽히지 않았는데 구축하고 있는 공간과 이야기가 다소 의아한 부분들이 있었다. 「빛나는 미래」도 솔직히 그 남자가 등장했을 때부터 결말이 예상되어서 아쉬웠다. 좀 더 비밀스러웠으면 했다. 「빛나는 상처」도 잘 읽히지 않았고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소설들은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가족 서사임에도 무척 매력적이었다. 소설집 전체를 서너 번 읽고 나니 오히려 곱씹을수록 좋았다. 충격과 허무, 그 사이를 넘나들며 우리에게 익숙하고 일상적이면서도 그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낯설음이 때로는 섬뜩했고, 때로는 슬프기도 했으며 아무렇지 않기도 했다.
이 아무렇지 않음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가장 처음 뿌리내린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 같다. 누구나 하나쯤은 비밀을 가지고 있고 그 비밀은 나 자신에겐 어느 누구보다도 거대하고 괴롭고 끔찍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어찌 보면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무고하다.
내가 최근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다들 사소해서 다들 무고하다’라는 문장을 중얼거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디서 들은 것인지 아님 명언인지 그것도 아니면 어디서 본 것인지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내가 한 달에 두어 번은 읽는 최승자 시인의 시인가 해서 찾아봐도 없었고, 결국에는 인터넷에 ‘다들 사소해서 다들 무고하다’를 쳐보았다. 그랬더니 그 편리한 인터넷은 단박에 그것을 찾아내 주었다. 심보선 시인의 시인 「종교에 관하여」였다. 그 중에서도 네 번째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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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루처럼 산산이 부서져 흩날리는 생의 신비여
십자가 위에서 으아, 기지개 피는 낙담한 신성이여
이제 내 몸엔 구석구석마다 가지각색의 영혼들이 깃들어 있다
정소현 작가의 소설집과 잘 어울리는 시 같다. 산산이 부서져 흩날리는 생의 신비들, 그리고 몸 구석구석마다 깃들어 있는 영혼의 외침들, 그것들은 다들 사소해서 다들 무고하게 느껴진다. 소설 속 인물들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