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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람 님의 서재
  • 잃어버린 조상의 그림자
  • 칼 세이건.앤 드루얀
  • 7,200원 (10%400)
  • 1995-03-01
  • : 13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의 공저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Shadows of Forgotten Ancestors)는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우주적 진화 과정에서 출현한 유인원의 후손임을 규명하는 책이다. 


DNA의 기본 원리부터 침팬지, 보노보, 바본 등 영장류의 사회적 행동을 분석하여 인간 본성의 기원(폭력성, 이타주의, 성적 행동 등)을 생물학적으로 추적한다. 


저자는 인류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수십억 년 생명 진화의 산물임을 진화론적 논리로 풀어낸다. 

그러나 이 책은 인간의 고차원적 정신세계를 지나치게 물리·생물학적 하위 단위로 환원하여 해석하는 생물학적 환원주의(Biological Reductionism)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 책이다. 


책은 우주와 지구의 탄생, DNA라는 분자 기계의 등장에서 시작하여 영장류의 진화로 나아간다.


인간의 지능, 감정, 면역계는 수십억 년 전 미생물과 초기 유기체가 생존을 위해 개발한 DNA 코드의 누적된 결과물로 설명한다. 


또한 인간의 영토 본능, 서열 싸움, 자식에 대한 애정, 집단 내 폭력성과 유대감은 유인원 조상들이 물려준 유전적 그림자에 불과함을 주장한다. 


결국 인간은 특별한 영적 존재가 아니며, 다른 동물들과 단지 DNA의 몇 퍼센트 차이로 갈라진 존재일 뿐이라고 인간 정체성을 간단하게 재정의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책의 서술 기저에 흐르는 '모든 현상은 하위 구성 물질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환원주의적 태도는 과학계와 인문학계 모두로부터 강력한 비판적 도전을 받는 부분이다.


1. 의식과 정신의 '하향식 환원' 오류 (Microbe Consciousness)


세이건과 드루얀은 단세포 미생물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며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확실히 아는 듯한 '자신감'을 보인다"라며 초기 형태의 의식(Rudimentary Consciousness)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복잡한 주관적 경험과 고차원적 '의식'을 단순히 화학적 쏠림 현상이나 분자적 메커니즘으로 환원해 버리는 오류이다. 인간 정신의 고유한 질적 특성을 단순한 분자 수준의 '반응'으로 격하시켜, 생명 현상의 의식의 난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했다. 


2. 사회생물학적 결정론과 '의인화(Anthropomorphism)'의 함정


저자들은 바본의 난폭함이나 침팬지의 집단 살해, 보노보의 성적 유대를 인간의 전쟁, 성적 지배 구조와 직접 연결한다. 바우어새가 둥지를 꾸미는 것을 인간의 '미학'적 공감대로 서술한다. 


그러나 이는 동물의 행동을 인간의 도덕적·문화적 개념으로 과도하게 해석한 후, 다시 인간의 행동이 그 동물의 유전적 본능에서 기인했다고 주장하는 순환논증적 오류일 뿐이다. 인간의 복잡한 사회적 행동(정치 제도, 법률, 윤리적 고뇌)을 동물적 생존 전략과 호르몬 작용으로만 환원함으로써, 인간 행동의 사회문화적 맥락과 주체적 선택의 가치를 소거해 버렸다. 


3. 창발성(Emergence)의 완벽한 무시


시스템 이론과 현대 진화생물학에 따르면, 하위 단위(DNA, 뉴런)가 모여 상위 단위(인간 사회, 문화)를 이룰 때 하위 법칙만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창발적 특성'이 나타난다. 


세이건의 서술은 "인간은 결국 복잡하게 얽힌 DNA 분자 기계와 유인원 유전자의 외현에 불과하다"는 식의 기계론적 결론으로 수렴하고 있다. 문학, 예술, 철학, 종교적 성찰 같은 인간 고유의 영역을 '유전자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한 부산물'로만 치부하는 것은 시스템의 상위 층위가 지닌 독자적 작동 법칙을 간과한 엄밀하지 못한 과학주의적 태도로 비판받는다. 


4. 과학주의적 서사시가 주는 착시 효과


세이건 특유의 유려하고 시적인 문체는 과학적 사실과 주관적 믿음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부분이다. 


"우리는 별에서 온 먼지이며, 동물 조상의 그림자를 품고 있다"는 감동적인 수사는 과학적 증명이라기보다 '세속적 종교'나 '새로운 신화'의 서사에 가깝다. 이 시적 미학은 독자로 하여금 저자의 '생물학적 결정론'과 '환원주의적 도약'을 비판 없이 사실로 수용하게 만드는 착시를 유도한다. 과학자가 자기 이론을 과학이 아닌 문학적 수사로 얼버무리는 태도로 비판 받는 부분이다.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는 인간의 거만함을 꺾고 생태계 및 우주와의 연결성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대중 과학서로서의 가치는 있다. 그러나 인간을 구성하는 물리적·생물학적 '기원'이 곧 인간의 '전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유전자의 그림자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동시에 그 그림자를 인지하고 통제하며, 유전자의 이기적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이다. 이 책의 철저한 환원주의는 인간의 '뿌리'를 밝히는 데는 성공했을지언정, 그 뿌리에서 피어난 인간 문화와 정신의 장엄한 독립성을 설명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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