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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님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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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  2022/09/13 02:09
  • 돌봄이 돌보는 세계
  • 김창엽 외
  • 15,300원 (10%850)
  • 2022-08-05
  • : 2,104

인간은 돌봄 없이 살아갈 수 없다. 단순한 생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을 전혀 돌보지 않고 타인으로부터 돌봄을 받지도 않는 존재를 인간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돌봄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필요조건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 속에서 돌봄이 그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은 경우는 많지 않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돌봄은 파편화되고 분절되었다. 자본의 논리 속에서 돌봄은 비생산적인 노동으로 취급되어 왔다.

이러한 상황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코로나19였다. 전세계적인 대유행이 지속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이었던 돌봄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유치원과 학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아이들의 돌봄에 공백이 생겼고, 요양병원이 집단 감염의 본거지가 되자 환자 돌봄 시설의 열악한 환경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이렇게 돌봄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시기에 발맞추어 기획되었다.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폭발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돌봄에 대한 담론은 턱없이 부족했다. 돌봄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제 어느정도 상식이 되었으나, 구체적인 논의 없는 공허한 외침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책은 돌봄에 대해 각자의 분야에서 치열하게 고민한 저자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질병, 교육, 젠더, 장애, 의료, 이주 등 다양한 키워드를 통해 한국의 돌봄 담론이 어디까지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돌봄 담론에 익숙한 사람은 물론이고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돌봄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나는 2019년부터 질병에 관한 글을 블로그에 써오고 있다. 글을 쓸 때도 가장 어려운 것이 기존의 사회 문법으로 말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약자들이 그러하듯, 아픈 사람이나 질환자는 세상과 단절되는 느낌을 ‘언어의 부재’에서 가장 통렬히 느낀다. 자신의 상황을, 고통을 비명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할 때, 그러니까 자신이 가진 언어가 어떤 의미도 없는 비명밖에 없을 때, ‘나’는 기존 사회에 속할 수 없는 이질적 존재이자, 이상적인 인간성이 결여된 존재가 된다. 실제로 이렇듯 비가시화된 장애를 가진 환자들은 자신의 병을 부정하게 되고, 극단적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p. 34).”

“이럴 때 다시 세상과 소통하고, 주어진 환경에 주체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일깨워야 한다. 뇌졸중 환자의 경험에서 보았듯, 낯선 공간으로 분리하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친숙한 세계에 다시금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정신의학이 해내지 못한 일이다. 오히려 평등한 존재들 간의 감성적 접근이 큰 도움이 된다. 당사자들 간에, 혹은 대안적인 시스템 속에서 서로의 안위를 묻고 위로를 제공하고, 필요할 때는 고통의 시간 속에 함께 있어주며 힘껏 돌봄을 받는다면 당사자는 예전에 거주했던 세계에 다시금 통합될 수 있다 (p. 48).”

“정신의학에서는 환자에게 진단을 내릴 때, 환자의 이야기를 모두 증상으로 해석한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는 ‘나는 이러한 사람이다’라는 자기 이야기를 상실하게 된다. 자기 삶의 가치나 목표를 가지고 자기 정체성을 구성했던 과거로부터 갑작스럽게 단절되며, 공허하고 무의미한 의학적 객관 앞에 던져진다. 따라서 환자에게 대안적인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처한 어려움을 그의 삶 전체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가 열망하고 존경하는 가치들과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삶의 목적들에 비추어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좋은 친구와의 관계와 비슷하다. 좋은 친구 사이에서 서로는 타자를 향해 자신을 개방하며 서로의 성장을 기대한다. 타자 속에서 자기를, 자기 속에서 타자를 발견하면서 자신의 부족함과 강점을 이해하고 좋은 삶을 위해 서로 변화해 간다. 당사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친구가 된다는 뜻이다. 위계 없이 평등한 관계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서 당사자를 환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겪었던 트라우마와 폭력의 경험을 나누면서 보다 나은 선을 실천해 가는 과정에 함께 동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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