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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앤님의 서재

이십 년 전 이 길을 함께 걸었던 여인의 이름이 입술 끝에 머물러있다. 그녀의 웃음소리를 기억하는 나무들이 추억 위로 따뜻한 색감의 얼룩을 퍼붓고 있다. 감춰져 있던 슬픔이 터져 나오듯, 커브길을 돌자 학교가 불쑥 튀어나온다. 암소들 사이에서 묘지 하나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비 온 뒤의 흙 내음이 다가오는 끝없는 시간을 걱정 없이 살라고 설득한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천국에 들어서지 못하는 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오직 그 이유 때문이다.
꽃들은 나를 취하게 했다. 세상의 그 어떤 철학도 데이지 한 송이, 가시나무 한그루, 머리를 민 수도승같은 모습으로 태양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며 웃고 웃고 또 웃는 조약돌 하나와 견줄 수 없다.

나는 하늘의 푸르름을 바라본다. 문은 없다. 아니면 오래전부터 문은 이미 열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끔이 푸르름 안에서 꽃의 웃음과 같은 웃음소리를 듣는다. 곧장 나누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소리를.

그 푸르름을, 당신을 위해 여기 이 책 속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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