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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kwan82님의 서재
'나'라는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씌어진 이 소설은 일인칭 소설의 특 장점 중 하나인, 진솔성을 지니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자서전을 본다는 느낌, 한 실존했던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느낌만을 받았다. 그 동안 수 많은 일인칭 소설들을 읽으며 '이건 어차피 사기야'라고 생각했던 나의 습관으로 볼 때, 특이한 일이었다.

이 소설은 일단 내용도 그리 복잡하지 않다. 한 아이와 연상 여인의 애정행각을 그리는 초반부와 나치 전범재판의 '주인공'이 된 여인(한나)의 이야기라는 두 축이 이 소설을 구성하고 있다. 애정행각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아이는 황달로 아팠고, 그 아픔을 어느 정도 극복해낸 때, 여인을 만난다. 그리고 여인과의 관계에서 자신감을 얻기도 하고, 아픔을 겪기도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그의 일생에 걸쳐서 그림자로 남는데 그러한 흔적은 소설의 곳곳에 나타난다. '내가 꾼 꿈들은 모두 비슷했다. 그것은 단 한 가지의 꿈과 테마가 변형된 것이었다'에서는 그녀가 살고 있었던 반호프가의 그 장소에 대한 기억이 나타나 있다. 그는 '나는 이제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녀의 '그 얼굴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그녀가 아이와 관계를 가지기 전에 의례적으로 행하는 책읽기의 모습은,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뒤에서 유태인 학살과 연결되어 그녀가 문맹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때, 솔직히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이 소설의 중간 이후는 솔직히 처음처럼 속도감있게 읽히지는 않는다. 솔직히 중간부분에 유태인 학살에 대한 이런 저런 아이(혹은 작가)의 이야기가 개입될 때는 너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와락 짜증이 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소설의 후반부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너무 인상적이어서 약간 도덕적이다시피 감동적이라는 삐딱한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와 그녀가 녹음테이프와 편지를 주고 받는 장면들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그녀와의 재회모습은, 더 이상 성교는 존재하지 않으나 그보다 더 강렬하였다. 그녀가 자살한 뒤에 7000마르크의 돈을 기부하는 것이나, 그녀가 그의 편지를 그토록 기다렸다는 교도소장의 말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관객들을 울리려는 감독과 각본의 의도적인 계획으로도 느껴지지만...

다른 소설들보다 재미있게 읽었고, 할 말도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막상 덮고 나니 그리 할 말이 많지는 않다. 왜일까? 아마도 그것은 이 소설에서 나의 경험을 추출해낼 수 없어서 일 것이다. 다른 소설들을 읽으며 나는 그 소설들 속에 나를 투영시키곤 했는데 이 소설을 읽어나가면서는 그러한 '작업'을 할 수 없었다..글쎄..한 번쯤 더 읽고 생각해봐야겠다. 아니다.. 이 소설은 두 번 읽으면 그 맛이 떨어질 것 같다. 그냥 한 번 읽은 기억대로 남기고 싶다. 주인공처럼, 희미한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하게..가물가물한 추억으로 만들고 싶다. 왜 있지 않은가? 어린 시절에 정말 좋은, 재미있는 소설이나 영화라고 생각해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찾아보았을 때, 그 재미가 반감하여 과거의 좋았던 기억마저 갉아버리는 그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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