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성의 한 극단
inkwan82 2002/05/1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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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을 노력해서 겨우겨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를 다 읽었다.상당히 큰 기대를 갖고 읽어서 그런가보다. 긴 분량의 책인데 읽고 나면 찝찝한 느낌이 남는다. 제목만을 보고, 전에 읽었던 <밑줄 긋는 남자>라는 책이나 <책 읽어주는 여자>와 같이, 다소 서정성이 넘치는 작품인줄 알았다. 독일판 <엽기적인 그녀>인데, 훨씬 더 엽기적이다. 이런 여자가 내 주변에 있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도 아마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에게 가까이 가지 않'았으리라. '사람들은 에리카를 빙 돌아간다'(p115)
이 소설은 읽다 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연극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주인공은 세 명이고 그들 사이의 갈등이 '엽기적'으로 벌어진다. 마치 한 무대에 서 있는 것처럼. 그 연극은, 눈에 생생하게 잡힌다. 좁은 공간과 인물들의 배치는 그 연극성을 뒷받침한다.
'그녀는 의욕 없이 마지막 연주곡을 시작하는 한 마리의 지친 돌고래다.'(p75) 그녀는 항상 힘들고 외롭다. 그녀는 가학적이 된다. 그녀는 레슨을 받는 아이들에게 냉혹한데, '그 망친 콘서트가 끝난 다음에 딸의 머리를 때리며 에리카 어머니가 딸에게 한 바로 그 몸짓'(p79)으로 아이들을 괴롭힌다. 그리고 자신이 당했던 그대로 '수업시간에 그녀는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지를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꺽어 버린다.'(p128)
악순환의 고리가 지속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스스로 격리된다. 어머니가 주는 것만을 먹고, 그것만을 모든 것으로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녀는 항상 외롭다. '점점 더 심각하게 그녀는 다른 사람이 전혀 알지 못하는 내적 삶의, 멀리 날아 올라가는 풍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간다.'(p104) '에리카 그녀는 결국 다른 한 편에 홀로 선 채, 자신이 외따로 서 있다는 사실에 긍지를 느끼는 대신 그 반대편에 복수를 한다.'(p85) 그러던 순간, 나타난 것이 발터 클레머인데 이는 그녀의 삶을 통째로 바꾸어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님직한 인물이다. 그러나 속내는, 그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녀와 마찬가지의 존재이나 또한 그녀와 가장 동떨어진 존재인 발터. 그는 처음에는 수줍은 남학생의 모습으로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의 손은 어둠 속을 더듬지만 잡히는 건 허공뿐이다.'(p100) 그 역시 절망한다.
에리카가 원하는 것은 '누군가가 자신을 감싸주는 것'이다.(p143) '그 사람은 그녀를 열망해야 하고, 그녀를 추적하고, 그녀를 우러러보아야 하며, 끊임없이 그녀를 생각해야 하며, 그녀에게서 빠져나가는 어떤 비상구도 가져서는 안 된다.'(p143) 한 사람의 완벽한 희생을 그녀는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클레머는 그렇게 해줄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여자를 불안하게 만들어서 그녀의 중심인 음악을 앗아간다.'(p144) 이 둘이 도시에서 서로 쫓고 쫓아가는 장면은 꽤 인상적인데 두 사람이 도시를 헤매고 다니는 이유는 '남자는 자신을 식히기 위해, 여자는 질투심으로 자신을 달구기 위해서다.'(p157) 그녀는 여전히 '고독한 여인'(p16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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