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무대에 눈이 내린다. 눈송이들은 점점의 흰 조명으로 표현된다. 그러니까 실은 눈이 아니라 빛이기 때문에, 눈송이 하나하나가 기묘하게 따스해 보인다. 바람 소리의 음향이 차츰 거세어진다. 눈송이 빛들이 한 방향으로 세차게 몰아친다. 그 방향을 거슬러 흰 옷 입은 여자가 무대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힘겹게 나아간다.
여자라기보다는 소녀에 가깝다. 너덜너덜한 담요를 왜소한 어깨에둘렀고, 추위에 곱은 손으로 담요가 날아가지 않도록 가슴팍을 여며 누르고 있다. 남은 한 손으로는 대나무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큰눈을 치뜨고 허공의 한 점을 올려다보며, 지팡이로 앞을 더듬으며소녀는 필사적으로 걷는다. 걸음이 하도 느려, 마치 영원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