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렬한 허기, 캐럴 바빈
henadustintheend 2026/08/09 16:00
henadustintheend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 맹렬한 허기
- 캐런 바빈
- 16,200원 (10%↓
900) - 2026-07-25
: 785
📖 '지금은 12월, 어머니가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 3주째고, 나는 여전히 육식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채식주의자로 사는 게 어떤 의미인지 배우는 중이다.'
책 속 문장이지만 놀랍게도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 역시 20년 가까이 채식주의자로 살아왔고, 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위해 매일 고기를 손질하고 국을 끓이며 식탁을 차린다. 한때 살아 숨 쉬던 존재를 식재료로 마주하는 일은 지금도 내게는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를 살리고 싶은 마음은 오래 지켜온 신념마저 기꺼이 넘어서게 만든다. 채식주의자인 내가 육식을 요리하며 느꼈던 딜레마와, 독한 항암약을 이겨내기 위해 어떻게든 단백질과 지방을 충분히 드시게 하려고 골몰했던 시간들이 저자의 기록과 너무도 닮아 있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여러 번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책은 암에 관한 이야기만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음식에 담긴 가족의 역사와 어린 시절의 기억, 함께 식탁을 둘러앉았던 시간, 부엌을 채우던 온기를 차곡차곡 꺼내 놓는다. 요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돌보고 기억을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주제조차도 저자의 문장 안에서는 파르메산 치즈 국물처럼 뭉근하게 끓어오른다. 뜨겁게 몰아치지도, 억지로 감동을 만들어내지도 않지만 천천히 스며들어 마음 한편을 따뜻하게 데워 준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희망이나 절망을 강요하지 않는 태도였다. 기적을 약속하지도 슬픔을 덮어버리려 하지 않고, 대신 오늘도 국을 끓이고 재료를 다듬고 함께 밥을 먹는 평범한 하루로 삶을 바라보며 이어가게 만든다. 결국 음식은 헌신이었고, 요리는 사랑이었다. 비록 내게는 저자처럼 이름을 붙일 만한 멋진 르쿠르제 냄비는 없지만 ^^,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불 앞에 서는 마음만큼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어머니는 수술 후 보조항암을 마치며 한 계절을 마무리하지만, 나의 어머니는 기약 없는 암과의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하지만 음식이 줄 수 있는 위로와, 요리하는 행위 자체가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내가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 조금은 정리가 되었다. 먼 미래를 생각하기 어려운 날에도 오늘의 한 끼를 준비하고, 평범한 하루를 살아내는 일은 여전히 가능하다. 결국 삶은 이렇게 손에 잡히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내는 데 있는 것 같다.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다. 채식주의자인 내가 육식 요리를 하는 이 모순된 일상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그 끝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예정된 이별의 슬픔을 마음 한편에 품고 있으면서도, 오늘 먹을 한 끼를 정성껏 준비하는 일이야말로 죽음에 가장 조용하고도 단단하게 맞서는 방식이라는 것을 캐런 바빈의 『맹렬한 허기』는 알려주었다.
오늘도 나는 부엌으로 향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허기를 채워주는 일, 그것은 어쩌면 삶을 끝까지 사랑하는 가장 평범하고도 용기 있는 방법인지 모른다.
.
.
#맹렬한허기
#캐런바빈
#맹렬한허기_캐런바빈
#녹스출판사
#암과요리의계절
📚 출판사 @nox.et.libro 로부터 선물 받은 도서를 정성껏 읽은 후, 자유롭게 작성한 저의 기록입니다.✨️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