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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adustintheend님의 서재
  • 소년은 바다처럼 운다
  • 임세병
  • 16,020원 (10%890)
  • 2026-05-28
  • : 435
책 표지에는 분명 에세이라고 적혀 있는데, 왜 나는 자꾸 시집을 읽고 있는 기분이 들었을까. 임세병의 『소년은 바다처럼 운다』를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다. 이 책의 문장들은 단정하게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물러난다. 어떤 문장은 눈앞의 풍경을 보여주고, 어떤 문장은 손끝에 감촉을 남기며, 또 어떤 문장은 오래된 기억 속 냄새까지 불러낸다. 그래서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보다 어느 리듬 위를 천천히 떠다니고 있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부서지는 파도처럼 이 책에는 언어의 경계도, 시간과 공간의 구분도 뚜렷하지 않다. 시각과 청각, 촉각이 뒤섞이며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문장들은 단단하게 굳어 있던 마음의 벽을 조금씩 허문다. 파리와 한국, 과거와 현재, 현실과 기억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가운데 작가는 자신만의 낭만적인 사유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그리고 그 사유는 어느새 독자의 감각 속으로 스며든다.

특히 저자가 사용하는 어휘와 문장의 풍부한 감성은 책 속의 풍경을 더 생생하고 오래 남게 만들어낸다. "그날 이후로 내게 이자벨은 보랏빛 태양으로 각인되었다. 코르시카의 여름이 수십 번은 오고갔을 잔주름이 고지도의 등고선처럼 빼곡했지만, 갓 맺힌 레몬처럼 단단하던 몸."이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코르시카의 뜨거운 햇살 아래 서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잔주름이 새겨진 얼굴과 단단한 몸, 태양에 그을린 피부와 야생화 향기까지 떠오를 정도였다. 단지 문장 몇 줄이 만들어낸 세계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선명했다. 저자의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너는 아무래도 예술가가 되려나 보다"라고 말했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는 눈에 보이는 장면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감각을 포착해 언어로 옮겨내는 사람이다.

"사람은 언제나 의미를 찾아 나아가야만 하는가? 무의미하게 살아본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허무는 곳곳에서 제멋대로 싹을 틔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 해도 해마다 나는 이미 먼 우주를 여행하고 있다. 막막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나아간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이미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날들조차 거대한 우주의 흐름 속에서는 하나의 여행이 된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위안이 되었다. 의미를 찾지 못해 불안했던 순간들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우리는 늘 의미를 찾고, 이유를 만들고, 목적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강박에서 한 걸음 물러선다. 삶이 언제나 합리적이거나 생산적일 필요는 없다고 말하며, 목적 없이 걷는 길에서도 충분히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의도하지 않았던 것들이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되고, 쓸모없어 보이던 것들이 오히려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위로 받는다.

책을 읽다 보면 바다는 더 이상 낭만의 상징으로만 남지 않는다. 끝없이 흔들리고 방향을 잃기도 하며, 깊이를 알 수 없는 불안을 품고 있는 존재로 다가온다. 하지만 바다는 파도를 멈추지 않는다.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흔들리고, 때로는 길을 잃고, 상실과 그리움을 끌어안은 채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계속 나아가는 일인지 모른다.

『소년은 바다처럼 운다』를 읽다 보면, 조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도 괜찮다고, 그래도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있다고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책장을 덮고 난 뒤에도 문장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밀려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파도처럼, 오래도록 마음속을 적시며 머문다. 그리고 문득 바라게 된다. 바다를 바라보며 끝없이 질문하고, 세상을 향해 호기심을 잃지 않는 그 소년이 영원히 소년으로 남아 있기를.


#소년은바다처럼운다 #임세병 #달출판사


📚 출판사로부터 선물 받은 도서를 정성껏 읽은 후, 자유롭게 작성한 저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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