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 사람을 파악하는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상반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그 사람의 연대기를 살펴보는 것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시간의 순서로 그가 겪은 일들을 나열하며 지금의 그는 이런 인물이리라, 하고 파악해 보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현재의 그에게서 어떤 모습을 포착하고, 그런 모습이 형성되는 데에 영향을 미친 그의 과거를 거꾸로 돌아보는 것이다.
전자는 조망할 수 있는 사실들이 일목요연하고 넓다는 점에 있어서는 양적인 우월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수많은 사건들이 쉽게 잊혀질 수 있다는 불안함이 있다. 후자는 강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질문의 초점에 맞는 사건들을 추려내고 의미있는 흐름을 파악하게 만다는 점에서 질적인 우월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요에 의해 걸러져 버리게 되는 많은 영역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둘 중 하나의 우월함을 논하기엔 모두 장단점이 있으며 서로 보완하는 면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것을 떠나서 역사를 공부하는 방법도 이렇게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역사를 연대기 순으로 공부하는 것은 교과서의 방식이고, 현재에서 관찰 가능한 사건이 지금의 모습을 띠기까지 역사 속에서 원인을 파악하며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바로 이 책, <세계 지도로 역사를 읽는다>의 방식이다.
제목만 보면 '지도'가 주가 되는 책이라고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작가 스스로도 그것이 이 책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으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역사를 탐구하고 있다는 점을 꼽고 싶다.
1. 현재의 사건을 포착
2. 사건의 원인에 대해 의문을 가짐
목차의 예) 스위스가 영세 중립국이 될 수 있었던 과정
바티칸 시국이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가 된 이유
동아시아의 소규모 세력 캄보디아가 독자적인 문화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
중국은 왜 티베트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가
3.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답을 찾아감 - 이 때 지도가 사용된다.
목차를 열어 보자마자 이 책의 그러한 가치가 돋보였다.
흔히 '역사를 공부하면 현재가 보인다', 혹은 '현재를 알고 싶다면 과거를 보라', 라고 말하는 이유를 시원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연대기 순으로 역사를 공부할 때 맞닥뜨리는 양적인 방대함에 기가 질린 경험이 있다면, 초점을 가지고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 책의 방식이 다시금 잃었던 역사에 대한 흥미를 부활시킬 것이다.
이 책은 하나의 문제의식 아래 큰 줄기를 가진 흐름을 기술하며 나아가 그것의 작은 줄기에 대한 더 많은 앎에 대한 욕구를 자극한다. 이전에 혐오했던 양적인 방대함을 환영하게 되어 스스로 또 다른 역사책을 찾게 되는 점이 재미있다. 준비되는 2권이 기대되는 책이다.
좋은 책을 읽을 기회를 주신 믿음사에 감사드립니다. 참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