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과 불안, 그 사이에서도 따듯함을 잃지 않기 위해서
작가 김탁환의 <천년습작>이라는 이 책의 제목에는 실은 몇 마디가 더 붙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 이라는 문구지요. 그 부제 안의 ‘따듯한’ 이라는 표현에 마음이 동해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어떤 따듯함을 찾아내기 위해 글을 읽고, 쓰곤 했습니다. 위로를 얻고, 반대로 주고 싶기도 했지요. 그러나 치열한 글쓰기의 세계를 알아갈수록 겁이 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타인의 글에서 받은 위로의 무게, 딱 그만큼을 세상에 도로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암담함은 홀로 읽는 일기를 쓰는 것 조차 막막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이를 관둘 수는 없었지요. 내가 세상에 내놓은 글의 무게가 아무리 비루하여도 도저히 그만둘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딜레마에 빠진 것은 세상에 나 하나일까, 매혹과 능력의 부재 사이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은 정말 나 하나일까. 그런 막막함을 느끼던 중에 이 책이라면 ‘따듯한’ 무언가를 가르쳐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글쓰기 기술’, ‘이야기를 만드는 테크닉’ 따위가 아니라 그 이전에 존재한, 모든 것의 완성자요, 구현자인 ‘작가’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듯하게 매혹되고, 따듯하게 불안하자
작가 김탁환 역시 그의 길 위에서, 아마 그 길의 처음이었고 마지막까지 이어질 어떤 매혹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매혹을 채울 수 없는 데에서 끊임없이 잉태되는 불안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꼭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뿐만 아니라 매혹된 꿈을 쫓는 모두의 사정이 될 수 있겠지요.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에 도달하기 위한 ‘스킬’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반면에 그는 보다 근본적으로, 꿈을 향해 달리는 ‘자세’를 이 책에서 가르쳐주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매혹과 불안 사이에서도 처음에 가지고 기대했던 어떤 따듯함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일까요.
독자들, 김탁환의 내제자가 되다
단순한 기술들은 공공의 공간, 즉 강의실, 세미나실에서 가르쳐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매혹된 꿈에 정진하는 ‘자세’를 배우려면 작가의 말대로 스승의 ‘내제자’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스승과 함께 거주하며 바로 스승이 꿈을 향해 정진하는 모습, 그 자체를 지켜볼 수 있는 제자 말입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기꺼이 독자들을 자신의 방으로 초대하고 내제자로 삼아서 기술보다 중요한 어떤 것, 바로 내내 이야기했던 그 ‘자세’를 보여주려 합니다.
이 자세는 단순한 마음가짐 같은 것이 아니라 ‘정신과 육체가 집중되어 예술작품(그 외 다른 어떤 것이라도)을 만들어 내기에 가장 적합한 상태’를 이르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점이 무척 난해하게 느껴졌습니다만 강의가 진행되면서 나름대로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글을 쓴다는 것은 흔히 정신적인 일로만 여겨집니다. 그러나 글쓰기가 자칫 발견이자 발견의 왜곡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한다면 단순히 정신의 영역에 머무를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발견한 어떤 세상의 본질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즉 본질 그 자체에서 글이라는 매체로 모습을 뒤바꾸는 과정에서 왜곡이 함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 우리는 정신을 구현하는 우리의 육체를 함께 단련해야 합니다.
천년습작에서 이 본질에 대한 인식과 발견을 뜻하는 정신의 영역은 ‘눈’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정신의 발견을 이 세상의 것-즉 글로서 표현해내는 육체의 영역은 ‘손’으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눈’은 더불어 관조, 발견, 정직, 삶 등과 관련이 되는 단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또한 ‘손’은 노동, 땀방울, 개성과 같은 단어의 한 이면이 될 수 있지요. 아무튼 ‘눈’으로 바라보는 곳 어디에서나 삶과 진실을 발견하고, ‘손’을 부지런히 단련하여 그 발견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낼 수 있는 그런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것. 다시 말하자면 양쪽 모두에 함께 마음을 쓰고 단련하여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가장 적합한 상태를 이루어내고자 하는 것이, 그러한 꾸밈없는 정직함이 글을 쓰는 ‘자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천년습작>에는 그러한 ‘자세’의 이야기와 주인공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작가의 이야기나, 작가와 여행, 작가와 상상력에 관한 이야기 등이 여러 가지 문학작품에 기대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령 ‘주인공’의 이야기가 등장한다고 하여 현대소설이론에서 다루는 캐릭터 구상법 등이 소개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문학작품의 주인공은 작가이기에, 사랑받는 주인공을 만들고 싶다면 작가 자신이 그만큼 완성되어야 한다는 사랑스러운 조언들이 가득하지요.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매혹과 불안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에게도 ‘따듯한’ 도움이 될 테지만, 바쁜 생활 가운데 책 읽기를 즐기는 한 명의 ‘독자’로서도 의미있게 읽힐 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앞에 놓인 책 너머에서 독자를 응시하는, 독자를 안내하는 ‘작가’의 애정과 따듯함이 아주 깊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참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