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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요람
  • 잔류 인구
  • 엘리자베스 문
  • 14,400원 (10%800)
  • 2021-10-27
  • : 2,365

 얼마 만에 듣는 이름인가? 엘리자베스 문이라는 이름은. 나는 그 이름을 '어둠의 속도'란 책으로 처음 만났다. 그러니까 2002년에 발간 되었을 때. SF 팬덤 사이에서 신선하면서도 깊이 있는 작품이 하나 나왔다고 떠들썩해서 만나게 된 작품이었다. 벌써 거의 20년 전에 읽은 것이라 이제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만 그래도 자폐아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서 그들이 어떤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만나고 있는지 살짝 엿보는 것 같았던 기분은 떠오른다. 엘리자베스 문은 그런 작가였다. 자폐가 정말 꼭 치료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갖도록 이끌었듯이, 타자의 입장에서 타자의 내면과 동조하도록 이끌어줄 수 있는 작가. 그렇게 하여 기존의 나라는 한계에 갇혀 전혀 보지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거기서 훌쩍 벗어나, 너머를 보고 헤아리도록 하여 더 넓은 범주에서 나와 타자를 가늠하도록 하는 것으로 내적인 성장을 가져다 주는 작가였다. 그런 작가이기에 그녀의 새로운 소설이 이번에 출간되었다고 하니 손에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작품의 제목은 '잔류 인구'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이다. 노년의 여성, '오필리아'는 '심프스 뱅코프 콜로니'라는 한 식민지 행성에서 회사 소속이지만 단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한 채 개척민으로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구에서 막 도착한 함대가 정체 불명의 외계인들에게 알 수 없는 이유로 살해당하자 컴퍼니는 식민지를 버리기로 결정한다. 다들 함선에 올라 극저온 수면 장치에 들어가 동면한 채로 이주할 것을 명렴 받았지만 할머니 오필리어는 그 장치에서 살아남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 떠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모두가 떠나버린 그 곳에서 자의로 '잔류 인구'가 된다. 하지만 그 별에 존재하는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잔류 인구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 별에서 원래 살았던 원주민들. 그녀는 그들과 만나고 그들에게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쳐 유대 관계를 형성한다. 오필리아는 마침내 그들에게 존경 받는 자리까지 오르게 되는데, 그러다 다시 지구에서 다시 사람들이 온다. 그들은 원주민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접촉하려 하는데, 군인과 과학자인 그들은 오필리아의 말에 전혀 귀기 울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오필리아는 단지 쓸모없는 할머니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필리아는 원래 햄릿에 나오는 이름이다. 그녀는 햄릿의 연인이었지만 햄릿이 만든 사건 앞에서 주체적으로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속절없이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그러나 이 소설 속 오필리아는 다르다. 결말은 그들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가르쳐 주니까 말이다.


(초판본 표지}



 노년은 효용성을 점점 더 중요하게 따지는 지금 사회에서 가장 그 의미를 잃어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령화 사회를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는 게 가장 뚜렷한 증거다. 예전엔 노년이 그 때까지 살면서 체득한 지식과 정보를 아주 중요한 정보로 간주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경로사상은 바로 그것의 흔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경험과 지식은 '꼰대'로 취급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옛것은 쉽게 도태되고 새것은 과장되게 환영받는 세태에서 '잔류 인구'는 참으로 여러가지 것들을 생각나게 만든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쳐든다'를 썼던 리베카 솔닛은 할머니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여성들의 기록은 남성중심사회에서 자주 보존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규정되어 그것들 대부분은 살아있는 할머니의 기억에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무시되고 버려져서 기록할 수 없었던 기억의 태피스트리를 짜는 것이 오늘날 여성 운동의 목표 중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잔류 인구' 또한 그 흐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쓸모'는 전혀 객관적이지 않다. 그건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관점에서 바라 본, 그것도 잠정적인 결과일 뿐이다. 그런데도 요즘은 사람을 쉽게 규정하고 가치 또한 함부로 판단하는 것이 점점 더 횡행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문의 '잔류 인구'는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경향인지 아주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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