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엔 사라진 여러 도시들이 존재한다.
어떤 도시는 화산 폭발로 삽시간에 사라졌고 또 어떤 것은 어떻게 사라졌는지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도시도 있다. 그런 도시들을 전면적으로 다루는 책이 이번에 나왔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애널리 뉴위츠가 쓴 '도시는 왜 사라졌는가'가 바로 그것이다. 주로 네 개의 도시를 다룬다. 하나는 신석기 시대 대표 정착지인 '차탈회윅', 다른 하나는 소설과 영화까지 만들어져 유명하게 된 '폼페이'.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왕가위의 영화 '화양연화'로 유명해진 '앙코르'. 마지막으로 상대적으로 우리들에겐 가장 덜 알려진, 미국 일리노이주에 있는 원주민이 세운 대유적인 '카호키아'다. 책은 작가가 그 도시들을 직접 탐방하여 그 곳을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견해들을 엮어넣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멸망한 도시를 기반으로 고고학적 내용들을 다루지만 별로 어렵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오히려 평소에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최신 고고학적 이론와 방법들을 경험할 수 있어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가 제법 빠른 편이다. 단적으로 경쾌하며 재밌는 책이다. 우리도 학창 시절 익히 들었던 신석기 혁명은 차탈회윅 때문에 생겼다. 차탈회윅은 인류 역사상 첫 정착지로 왜 신석기인들이 유목을 버리고 정착을 택했을까 하는 의문을 현재도 우리들에게 남기고 있다. 호주의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가 1936년에 발표한 책에서 처음으로 말한 '신석기 혁명'이란 말 또한 그걸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차탈회윅에서 무려 25년간 연구했던 이안 호더는 별명이 인디애나 존스의 라이벌이라고 한다. 유물에 대하여 그가 추구하는 방향이 인디애나 존스와 정반대라 그런 별칭이 붙여진 것인데, 인디애나 존스는 유물 중심주의자이지만 이안 호더는 정황고고학의 선구자다. 유물이 발견되면 그 유물의 가치에 천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고대 사회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어떤 의미와 역할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먼저 연구하기 때문이다. 그 연구를 통해 이언 호더는 당당하게 선언한다.차탈회윅은 성차별도, 계급차별도 전혀 없었던 사회였다고.
[차탈회윅의 모습]
뒤이어 나올 폼페이와앙코르 등과 같은 도시에서도 이러한 정황고고학 분야는 중요해진다. 요즘은 이렇게 그 때의 사람들은 도시에서 어떻게 생활했는가를 알아보는 곳으로 고고학적 연구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우린 앙코르에서 최신 고고학 기술인 '라이다'에 대해 듣게 되는데, 그건 레이저를 지구 표면에 대고 쏘아서 거기서 반사되는 광자를 측정하는 기계다. 그걸 이용하면 아주 오래전에 사람들이 도시를 어떻게 형성했는지 관측 가능하다고 한다. 한 마디로 인위개변지형학 연구에 이상적인 도구다. 그것을 통해 수 백년간 풀리지 않았던 앙코르 와트의 수수께끼도 풀렸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앙코르와트엔 수백만의 사람들이 살 수 있었다고 되어있는데, 지금 보여지는 도시 규모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이다로 측정해 보니 보이는 부분보다 도시의 크기가 훨씬 더 거대했다고 한다. 그 정도의 인원도 충분히 수용 가능할 정도로. 그것을 통해 앙코르와트를 건설한 크메르가 당대의 유명 도시에 버금가는 거대 도시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도시는 왜 사라졌는가?'는 최신 고고학적 이론과 기술들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폼페이처럼 이름만 들었던 유명 도시들에서 실제적인 삶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아주 잘 알수 있게 한다. 폼페이의 유적 대부분은 사는 사람들의 이름을 알 수 없어 시인의 집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유일하게 이름이 확인된 집이 있는데, 그곳을 통해 폼페이가 어떤 사회적, 경제적 환경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서 사람들은 어떤 소비 행태를 하고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당시의 도시 서민의 삶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독서를 즐겁게 한다. 총평하자면 가독성 좋고 읽고나면 지적 충만과 더불어 상상력 또한 왕성해지는 책이다. 책을 읽으며 차탈회윅이나 폼페이 또는 앙코르와 카호키아의 이 골목, 저 골목의 모습을 한껏 그려보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