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제부턴가 나만의 사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실제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나의 경험적 의미를 담은 사전이겠다. 분명 그런 생각을 가진지 족히 5년은 된 것 같은데, 아직 생각만 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마침 이번에 읽게된 <이적의 단어들>은 내게 먼저 만든 그의 사전을 훔쳐보는 기분이 들게 했다.
2. 책은 단어와 그 단어를 떠올릴 수 있는(그 단어와 연결된) 그의 생각 또는 에피소드를 담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책을 읽으면서는 '이사람 진짜 재치있다' 라는 생각을 했고, '평소에 이런 다양하고 재미있는 생각을 한 덕분에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었구나!'싶었다.
3. 책을 읽다가 유독 안 읽히고 공감도 안되고 재미가 없던 부분이 있었는데, '상상의 높이' 챕터에 있는 글이 대체로 그랬다. 사실 나는 상상, 허상, 공상, 망상 등의 단어와 상당히 거리가 먼 사람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굳이 떠올려보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세계관이 분명한 글을 읽으면 몰입하기가 어려움을 느끼곤 한다. 덕분에 그의 상상 속 세계는 내가 범접하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4. 이참에 나의 단어를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거리가 멀고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는 '상상'에 대한 경험적 의미를 떠올려보니, 상상은 나에게 '불안'으로 연결되는 단어였다. 학부생시절, 전공수업으로 <정신병리학>을 들을 때였다. 당시 쉬는 시간마다 교수님을 찾아가 질문을 하곤 했는데, 나의 질문은 대체로 '계단을 내려갈 때 뒤에서 누가 밀어버릴까봐 불안해요.' '제가 잠든 사이에 끔찍한 사고가 날까봐 불안해요' 같은 것들이었다. 거듭 찾아와 질문하는 나에게 교수님은 마지못해 웃으며 "그정도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불안이야"라고 했다. 일반적인 거라고.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였겠지만, 상상을 즐겨하지 않게 된 지금도 계단을 내려갈 때 벽쪽으로 몸을 한껏 붙여 사람들과 닿지 않으려는 나를 발견한다. 여전히 누군가 나를 밀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있다.
5. <이적의 단어들>을 읽으면서 의미를 두지 않은 채 지나쳤던 다양한 단어들을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됐다. 굳이 상상하지는 않더라도 내가 일상에서 만나는 단어들에 의미를 더해줄 수 있을테니까. 그렇게 나의 단어들을 만들어 갈 것이 기대가 된다.
+ 삶이 무료하고 무난해서 지루한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일상이 특별해질 수 있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