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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per111님의 서재
  • 라이어스 포커 (완역본)
  • 마이클 루이스
  • 16,650원 (10%920)
  • 2025-01-24
  • : 955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마도 한국의 주식 투자자들에게 가장 큰 임팩트를 남긴 금융 관련 해외영화는 빅쇼트일 것이다. 빅쇼트는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직전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거품낀 금융상품들의 연쇄붕괴가 재앙을 불러오는 과정을 위트있는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명작이다. 등장인물의 실제 모델인 마이클 버리가 국내에서도 유명해지고 빅쇼트라는 단어도 유행했다. 심지어 몇년 후 만들어진 한국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빅쇼트의 플롯을 상당부분 차용하기까지 하였다. 빅쇼트는 기록적 재앙인 08 금융위기를 냉소적이고 관조적으로 바라보면서 날카롭게 비판하고 또 친절하게 설명한다. 이전까지 코미디 각본만 작업하던 아담 맥케이 감독은 코미디를 벗어난 첫 작품에서 사회적 문제를 시니컬한 감각으로 비판하고 풍자한 성과를 인정받아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각색이란 글을 새롭게 고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렇다면 빅쇼트는 아담 맥케이가 원작자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렇다, 사실 빅쇼트는 영화만큼 훌륭한 원작이 있었다. 바로 작가 마이클 루이스의 동명 서적이 그것인데, 심지어 영화에서 보여준 시니컬한 유머와 세밀한 취재, 낮은 눈높이의 설명은 모두 마이클 루이스가 원작에서 먼저 선보인 요소들이었다. 마이클 루이스는 사회고발적이면서 유머러스하고 아주 쉽게 빠져드는 글을 쓴다. 실제 사건들을 리포트하는 에세이를 쓰면서도, 여느 소설에 버금가는 몰입도의 작품을 써내는 작가이다. 정말 탁월한 작가가 아닐 수 없다.

마이클 루이스는 80년대 중후반에 살로먼 브라더스에서 채권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 월가를 직접 경험했다. 살로먼 브라더스는 당시 급증하고 있는 채권시장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다가 몇년 뒤인 91년에 국채입찰조작으로 몰락한 투자은행이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우연한 기회에 당시 사회 분위기상 큰 돈을 벌 겸 살로먼 브라더스에 입사했던 그는, 그곳에서 금융계의 비인간적 탐욕과 사회적 위험성을 충격적으로 경험한다. 그가 현장에서 느꼈던 월스트리트의 이익추구와 혁신, 그리고 비생산성과 위험을 이 책을 통해서 생생하게 묘사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을 통해 데뷔하였던 마이클 루이스는 후에 <빅쇼트>를 내면서 다시 월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이 <라이어스 포커>에 빅쇼트의 서막과도 같은 모습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빅쇼트 맨 처음에 나레이션으로 불량 금융상품들이 점점 심한 거품으로 몸집을 불려가는 과정에 포함되는 내용이 이 책에서 그리는 80년대 월가의 모습에서 보인다. 바로 주택담보대출채권 상품의 초기 모습이 나오는 부분이다. 후에 이 상품이 여러번의 진화를 거치면서 거품에 거품을 거듭하여 08년도 금융위기를 초래하게 되는데, 나비효과의 첫 발원지를 보는 셈이다. 작가의 최고의 히트작이 첫작에서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니, 정말 운명이란 재미있다.

모기지 채권 팀을 운용하다가 운좋게도 시대의 흐름이 그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면서 그야말로 돈을 쓸어담는 살로먼 브라더스 모기지 팀의 이야기는 그냥 그 자체로 재미있다. 책을 읽다보면 영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정크본드 판매 및 시장 붕괴라는 측면에서 실제로 겹치기도 한다.) 본래 금융계 이야기는 항상 흥미롭지만 용어와 복잡한 상품 구조 등 한눈에 이해하기 어려운 요소가 많은 편인데, 마이클 루이스의 쉽고 재미있는 글은 금융이슈의 높은 문턱을 상당히 상쇄시킨다.

마이클 루이스는 회사의 위기에 대량해고사태를 목도하면서 상당한 충격을 받는다. 놀랍게도 그를 케어해주는 임원의 가호 아래 그는 해고사태에서도 벗어나 더 높은 연봉을 받게 되지만, 그와중에도 그는 회사의 비효율적인 조직운영과 해고를 비웃고 도리어 자신은 돈의 유무에 따라 회사를 옮기는 유형은 아니라고 말한다. 회사에 충성하지 않은 이들이 결과적으로 더 큰 돈을 벌었고, 회사에 충성한 이들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적은 보수와 해고위험을 가지는 상황의 아이러니가 재미있다. 금융회사는 종목을 손절하듯이 직원들을 손절했다.

마이클 루이스는 충격적인 금융계의 현실을 경험한 후 자신의 말대로 돈과 상관없이 스스로 퇴직하였다. 비현실적인 돈들이 매일 오가는 세계에서 지친 결과로, 그 살로먼 브라더스를 별 이유도 없이 그만둔 것에 대해 스스로 반신반의하면서 책을 마무리하는 마이클 루이스는 얼마 후 불세출의 작가가 되었다. 바로 첫 작품인 이 <라이어스 포커>에서부터 대박은 이미 시작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스스로의 인습을 끊어낸 예상밖의 결정에 인생을 베팅하여 대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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