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하고 오롯한, 시인 최현우의 산문📝]
최현우, 『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한겨레출판, 2021).
인간이 자기 언어를 증류할 때 좋은 시가 나오고, 달여내면 좋은 산문이 나온다. 시가 수렴한다면, 산문은 발산하는 셈이다. 그래서 시인의 시에 배인 복잡다단한 향들은 그가 쓴 산문의 뭉근하게 풀어진 질감 속에서 해명된다. 그래서 나는 시인들의 산문을 종종 찾아 읽었다. 폐렴으로 병원에머물 때, 기형도 전집에 수록된 그의 소설과 여행기를 읽던 기억이 떠오른다. 시의 쓸쓸함이 꽤나 희석되어 있는 그의 문장에서 환자복을 입고 있던 나는 알 수 없는 위로를 얻었다. 다시 그의 시를 읽을 때면 산문과 시의 언표들을 연결하는 투명한 ‘인용의 끈’이 환상처럼 보이는 듯했다.
그러다 보니 시인으로 알려진 사람들의 산문을 접하면, 이것은 시집을 읽고 그다음에 읽어야 할 테다, 라고 생각해버리고 치우기 일쑤였다. 산문을시집의 주석처럼 대했다. 최현우의 산문집 『나의 아름다움이 너의 아름다움과 다를지언정』을 처음 펼칠 때도 아직 시를 읽지 않았다는 은근한 죄책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그러나 책장을 얼마 넘기지 않고서도 나는 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쉽게 알아차렸다.
그의 산문이 시와는 독립된, 그 자체로 오롯한 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최현우의 글에서 시인의 냄새보다는 인간의 냄새가 풍긴다는 점이었다. 나의 편견에 따르면, 시인들은 산문을 쓸 때 ‘산문’을 쓰는 것처럼 쓴다. 사실 이건 당연한 말이지만, 이 책 속 시점의 최현우는 출간을 위한 글이 아닌 온전히 스스로를 위한 기록들을 써내려가는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작품으로서 산문으로 읽히기보다는인간 최현우에 대한 그대로의 고백록으로 읽혔다. “과거의 나로부터 이런 내가 되기까지, 내가 도착한 삶의 서사를 있는 그대로 따랐다.”(작가의말, 6) 그래서인지 책의 전반에 흐르는 쓸쓸함 속에는 건포도처럼 유머와 희망이 박혀 있다. 일부러 정서를 정제하여 우울과 슬픔으로 책을 채운다면, 그것은 작위적이겠다. 최현우는 그러지 않고, 이질적인 불순물을 남겨둔 문장들을 꺼내놓았다. 위로가 된다.
어떤 시인은 몸풀기로, 연습으로 산문을 쓰는지 모르겠다.(나는 시인이 아니므로.) 그러나 최현우의 산문들은 귀중한 그만의 세계이다. 그가 골몰해온 주제를 따라가는 것은 사람을 사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이 책을 읽었다.
📌 “자유의 용도는 저울이 아니다. 저울에서 들어 올려지고 결국 튕겨 나간 자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 다치지 않도록, 저울 주위에 둘러치는 안전그물 같은 것이다. 다수결은 최선을 가리는 의결 수단이지 최악을 심판하는 판결 수단은 아닐 것이다.”(88)
📌 “소소하고 확실하다는 건 얼마나 강력한가. 얼마나 개별적이고 확고한가. (…) 세계의 북적거림이 내게 올 수 없고 나도 그 어떤 세상이 필요하지 않은, 아주 사소하고 견고한 순간이란 건. / (…) 내가 지켜낼 수 이쓴ㄴ 행복이란 건 그래서 그토록 사소한 순간들뿐이었을까. (…) 행복은 어째서 세상을 유리하고 내가 나로 작게 웅크릴 때만 확신할 수 있나. 나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이, 어째서 세상은 이토록 완벽한가.”(160-161)
📌 “생각해보니, 나는 어디로도 가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어디로 간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고, 어디로 가라고 듣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으면 했습니다.”(175)
📌 “그러나 나는 되레 가장 평온한 순간에 얼굴에 비치는 그늘 같은 것이 쌓이고 쌓여서 사람의 마음이 절대적으로 망가진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불행은 그 예감만으로도 생활의 모서리를 깨뜨린다.”(190)
📌 “별난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타인을 재료로 작동하는 별남은 싫다. 타인을 앙상하게 깎거나, 반대로 타인을 광적으로 보존하려는 그 어느쪽도 멋지지 않다. 자폭이 제일 멋지고 무섭다.”(201)
※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 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별난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타인을 재료로 작동하는 별남은 싫다.- P201
불행은 그 예감만으로도 생활의 모서리를 깨뜨린다.- P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