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손에 안 잡혀서 언제 다 보나 싶었는데 마음 먹고 보니 금방 다 봤네.
마음에 담아가며 읽을 텍스트는 하나도 없지만 정보로 따지면 학창 시절에 공부하듯 전부 외워야 할 것 같은 부담스러운 책인데 뒤로 갈수록 소소한 재미가 생겨서 나쁘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디 원산이고 국내 어디서 자라고 낙엽인지 상록인지, 활엽인지 침엽인지, 관목인지 교목인지... 그런 정보가 그냥 제끼기는 찜찜하고 굳이 한 자 한 자 꾹꾹 밟아가며 읽자니 머리에 통 안 들어오고 그래서 거추장스러웠는데 매 페이지의 구성이 눈에 익기 시작하니 부담이 좀 덜해졌다. 바꿔 말하면 대강 그러려니 하고 보았다는 것.
더 중요한 것은 책을 넘겨가면서 점차 각 식물의 특징을 다른 식물들과 비교·대조하며 보게 됐다는 점이다. 초반에는 비교 대상이 적어 사진과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으나 뒤에서 유사한 형태, 같은 과, 같은 속에 속한 식물들이 차츰 등장하면서 앞뒤로 넘겨보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를 테면 자두, 앵두, 호두처럼 '두'가 붙는 과실수 이름은 대개 복숭아 도(桃)가 변형된 것이라든가 우리가 흔히 목련이라 부르는 것은 사실 중국에서 온 백목련이고 한국의 목련은 제주도 한라산에 자생한다는 사실, 우리가 사는 곳곳에 콩과와 장미과에 속하는 나무가 굉장히 많다는 사실 등을 이리저리 비교해보며 파악하고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
전에 쓴 글에서도 밝혔듯이 도감인데도 사진이 부족한 것은 흠이다. 나무마다 사진이 한 장씩만 붙어 있고 사진이 아예 없는 것도 너댓 개 정도 있었다. 나무는 계절마다 외양이 달라지므로 정보를 정확히 습득하려면 수관을 포함한 전체 모습과 잎, 꽃, 열매, 뿌리 등을 확대해서 찍은 사진이 골고루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다 읽어보고는 적지 않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기에 만족한다. 물론 한 번 봐서는 완전한 지식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일단은 이걸로 만족하자... 일부러 두 번 보기에는 책장에서 기다리는 책들이 많으니까.
나에게 책 읽기는 항상 과거의 나를 따라잡는, 혹은 과거의 내가 입수한 온갖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한 임무 같은 것인데 이 책도 그 범주에 포함된다. 2008년 6월 16일 동대구역에서 산 도감을 다 읽어 옛날 짐을 겨우 하나 덜었지만 책은 수시로(!!!!!!) 늘어난다. 예전에 새 책은 그만 사고 책장에 꽂힌 책부터 다 소비하자고 생각했는데 몇 년 전 결혼하면서 아내가 가져온 책이 내 것만큼 있다. 자연히 소비해야 할 콘텐츠 목록에는 아내의 책들도 추가됐는데 일단은 내 취향이 아니어서 언제 손을 댈른지 모르겠다. 일감이 아니라 취미로 보는 책은 늘 반갑고 좋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한 구석에 쌓인 짐 같다. 어제도 책이 두 권 늘었다. 미션 완료까지는 갈 길이 계속 멀어지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