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표지에는 깊은 물에 뛰어든 사람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짙은 푸른색으로 표현된 이 물은 이 사람을 잡아당기는 무겁고 깊은 마음속 어둠인 것만 같다.
하지만 사진을 찍으면 깊은 어둠 속에서 반사되어 밝은 빛이 드러나는데, 절망한 사람의 심연에도 빛이 비출 수 있다는 의미로 나는 상상력을 더하여 해석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가는 사후세계.
이곳 사람들은 목뒤에 몇 겹이나 되는 매듭이 묶여 있다.
이 매듭을 풀어야 이곳을 떠나 진정한 안식을 찾을 수 있다.
목뒤의 매듭은 자신이 직접 풀 수 없고, 사람들과의 유대를 통해서만 풀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과 아무리 깊은 정을 나누어도 매듭은 최대 두 개까지만 풀 수 있다.
자신의 매듭을 풀려면 어쩔 수 없이 더 넓은 세상 속으로, 더 많은 사람들 속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팍팍한 현실에 지쳐서,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죽음을 선택했고, 이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사후세계는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한 유대가 더 강조되는 사회였다.
서진이 대학생일 때, 서진의 어머니는 막내 동생만 데리고 사라졌다. 둘째 동생과 집에 남겨진 서진은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나가려고 아르바이트를 몇 탕이나 뛰며 생활비와 학비를 벌었다. 몇 년 뒤 어머니는 막내 동생과 함께 돌아오지만, 늘어난 가족수만큼 갚아야 하는 빚도 더 늘었다.
대학 동기들이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을 때, 서진은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더 늘려야 했다. 결국 취업에 실패하고 자신을 불러준 선배의 학원에서 조교로 일하게 된다.
서진은 아무리 애써도 나아지지 않는 생활고, 자신과는 너무 먼 나라 사람처럼 느껴지는 애인 곁을 떠나 대학 선배 장준성과 결혼을 한다. 그러나 결혼은 현실의 도피처나 더 나은 삶의 대안이 되지 못했다. 남편에게 매를 맞고 가스라이팅을 당하다가 서진은 강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죽음을 맞았다.
그런데 이곳 사후세계에서 첫사랑, 이건웅을 만났다.
그리고 서진의 전 남편, 장준성도 먼발치에서 발견했다.
이들은 왜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매듭을 풀어 진정한 쉼을 누릴 수 있을까.
삶의 무게, 인간의 무게.
이 책에서는 이런 무게를 의미하는 단어로 흔히 쉽게 떠올리는 '중량'이 아니라 '질량'이라는 말을 내세운다.
가끔 다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데 왜 나는 이렇게 불행한 걸까, 자기 연민에 빠져 한탄할 때가 있다.
불행의 크기를 굳이 남과 비교하며 나보다 훨씬 작은 아픔과 불행에도 비명을 지르는 이들에게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작가는 우리가 다른 중력이 작용하는, 다른 사람의 행성에는 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모두 같은 질량이지만 거기에 더해지는 중력 때문에 어떤 이는 더 무겁게, 어떤 이는 더 가볍게 견뎌내며 삶을 사는 게 아닐까.
우리 행성에 가해지는 각기 다른 중력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의 질량을 알게 되지 않을까.
자살과 사후세계, 목뒤에 매인 매듭을 풀어야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신선했다.
우리의 삶을 질량과 중량으로 나누어 설명한 대목에도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할까.
그냥 다 놓아버릴까.
이런 삶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질 때 한 번쯤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이 포스트는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무게와 질량. 무게는 중력가속도의 영향을 받고 그래서 중력 가속도가 클수록 무거워지지만 질량은 모든 행성에서 동일한 값을 가진댔지, 그러니까.
각자에겐 서로 다른 세기의 중력을 가진, 각자의 마음이 머무는 행성이 있어. 아무도 모르고 오직 저만 발을 디뎌보았기 때문에 그 중력이 얼마 정도인지는 저만 느껴보았지만 동시에 아무도 서로의 행성에 방문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타인의 중력을 알지 못해. 나는 누군가의 행성에서는 내내 둥둥 떠다니느라 누군가에게 달음질치지도 못할 테고, 또 다른 누군가의 행성에서는 온몸이 납작하게 짜부라 들어 행성의 주인이 결코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게 될 거야." (323쪽)
"나는 내 짐이 가장 무겁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내 행성의 중력이 가장 센 까닭이었을 수도 있어. 나는 저 사람의 짐이 가볍다고 생각했지만 내 짐을 저 사람의 행성에 옮겨 놓으면 깃털 같은 무게감만 가지게 될 수도 있단 말이야." (3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