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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님의 서재
  • 로야
  • 다이앤 리
  • 11,700원 (10%650)
  • 2019-04-19
  • : 218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술술 잘 읽혀요. (짧음)

고통의 인지나 지난날의 불행함을 기억해 나가고 치유를 해나갈 것 같거든요.

 

 

그러나 머지않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낍니다. 

(고구마 시작)

 

 

몸이 자주 찌뿌둥하고,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요통이 심하신 부유한 중산층 주부의 넋두리가 반복되기 시작하거든요.

 

 

제게 몸과 마음이 아픈 부유한 중산층 주부에게 아무런 악감정이 없음을 함께 알려드려요. 사고의 후유증도 잘 알고 있어요. 덧붙여 외국의 의료서비스가 우리나라처럼 접근성이 용이치 않다는 것도. 참고로 우리 집은 의료보험료가 월 30만 원 정도 나가요.

 

 

꿈들은 뭐라도 의미 부여받기 위해서 노력 중이고,

어떻게든 아무것도 없는 일상을 뭔가 숨긴 듯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아무런 감동이나 의문도 주지 않는 추상적인 의미부여가 주를 이룹니다. =

(일상 속에 감춘 상처와 트라우마에 그리고 아픔을 꿋꿋이 마주 대하는 자세를

보임으로서 치유 쪽으로 가려고 한 것 같은데 망했어요.)

 

 

= 왜냐면 생각도 특별하지 않고,

일상에도 별다른 일이 없으니까요.

가정 주치의, 테라피스트, 아들은 수영클럽 클래식 음악회가 취미.

물론 주인공의 일상을 나열할 수도 있어요.

절제된 듯 무심하거나,

조금 더 심도 있게 나열했다면 좋았겠지만.

 

 

평범한 일상도 글이 될 수 있지만,

감성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감성이 있기는 합니다.

뭔가가 있는 주인공이 되려는 감성 혹은

     

  

무기력.

무기력도 소재가 될 수 있죠.

처절하거나 혹은 잔잔하거나.

   

  

이건 그냥 지긋지긋한 맹탕임.

  

  

아무것도 없으면 맛깔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없음.

맛깔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다른 게 없으면 그거라도 있으면 좋겠거든요.

 

 

(주인공에겐 날씨가 흐리거나 추운 캐나다에 살아서 그런 것 같으니,

 골밀도를 높이기 위해 칼슘이나 마그네슘 섭취를 권하고 싶었어요.)

 

    

주인공이 아픈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가정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었거든요!!

 

 

이걸 소재로 했다는 게 나쁜 건 아닌데,

거기에서 의미부여를 하고 정체성을 찾아요.

  

  

네, 그럴수도 있죠.

  

  

그런데 이 느낌이 어떤 느낌이냐면

주인공은 자신이 숨 돌릴 여유조차 없이 바쁘다고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표현만 바쁨.

 

 

또띠야나 만들면 되거든요.

(또띠야 무시 아님.)

  

  

된장찌개에 반찬 한두 가지라도 만들면서

바쁘다고 했더라면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아요.

(손 많이 가는 외국요리를 몰라서 예로 들어봤어요.)

  

  

수필 아니고 소설이니까요.

  

  

몸이 약한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생각할 시간이 아주 많음.

생각할 시간이 많은 건 좋은 거죠.

그걸 구질구질해지는데 사용한다는 게 문제일 뿐.

  

  

아무 발버둥도 치지 않아요.

  

  

*선후 관계를 따지자면,

지난 과거가 아파서 내재 된 트라우마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본인은 뭔가 특별하고 싶은 대 그런 것이 없으니까

상처를 보여서 정체성을 찾고 싶어 하는 느낌?

  

  

주인공이 꼭 특별한 필요는 없지만,

그 방법으로 가정폭력의 트라우마를 선택한 건,

약간 후지게 느껴졌습니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

  

  

상처와 트라우마가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게 아니라,

 

 

난 상처와 트라우마를 숨긴...

평범한 일상을 유지해가는 뭔가 있는 사람이야 이런 거?

후지다는 표현은 저도 제 인생에서 처음 써보는 것이기도 해요.

  

  

이 책에 이입하려면

최소한 사회에서 도태된 일부 40대 전후반이 가질 수 있는 감성이 있어야 합니다.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주부에게

굳이 사회에서 도태되었던 말을 표현하지는 않을 거예요.)

  

  

실제로도 책 속에 그것을 고백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필수사항은 아니에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대로 저 조건에 부합하는 독자들이 모두 이 책에 공감한다는 뜻도 아니고요.

 

 

시간이 남아돌면 이입이 더 용이 해집니다.

아니면 자기 연민이 강하신 분이던가요.

  

  

그럼 내가 바로 주인공.

것도 아니면, 저처럼 속았거나요.

  

  

스토리가 이것과 완전히 똑같다고 해도

다른 작가분이 

  

  

나는 평범한 중산층 주부고,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에

근처에서 인연이 있는 다른 가족의 아이가 피살되고,

시아버지 죽고

다문화에 사랑스러운 아이 가정폭력으로 얼룩진 과거를 지닌 주인공을 쓴다면

과연 이런 식이었을까요?

  

  

물론 셀 수 없을만큼 다양한 방식이 있을겁니다.

없는 시간이라도 내서 읽고 싶은 글이 될 수도 있었을 거예요.

 

 

아무리 분량이 많아도 중간에 접을 수도 없을 만큼

여러 번 읽어도 질리지 않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책들이 많아요.

    

 

정말로 작가적 소명과 재능 or 노력 또는

노력과 재능이 모두 있으신 분이 쓰신 것들이기 때문이죠.

500페이지가 넘고 이 책보다 글자 수가 훨씬 많더라도

하나의 의미를 서사를 통해 이런 식으로 흡입력 있게 드러낼 수 있구나.

몇 번을 읽어도 감탄하게 하기도 하고,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살인 혹은 이 책처럼 학대, 가정폭력을 풀어나가며

감명을 주기도 해요.

  

  

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장의 표현은 물론, 그 의미를 몇 번이나 읽으면서 곱씹어 보게 돼죠.

그렇지 않더라도 글 쓰는 사람이 썼구나 정도는 느껴요.

 

 

설령 진부하더라도.

  

  

이건 한 번 읽기도 힘들어요.

고통은 알겠지만, 울림이 거의 없어요.

커뮤니티나 카페 가서 글을 읽어도 고통은 알겠지만,

울림은 없을때가 있는 것처럼.

그냥 후짐.

소설이라서 그래요.

진솔한 수필이면 후지다고 느끼지 않았을 거예요. 

 

 

 

주인공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햇볕쐬고 운동하고 비타민이라도 챙겨 먹으라고.

그것부터 시작하시면 될 것 같다고.

정신과 상담도 받으시고.

 

  

관심은 많은데 방치하는 건 도대체 주제가 뭔가요?

 

  

어린 시절 트라우마 가정폭력의 중대성은 잘 알고 있어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죠.

그렇다고 해서 연민에 떠넘길 문제도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것을 소재로 한 *순문학 소설은

독자의 연민이라는 바람을 타고 그저 흘러갈 돛단배 같은 게 아니에요.

독자의 연민을 더 끌어낼수록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반대로 있어서 나쁜 것도 아니고요.

그저, 독자의 연민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나치게 이 부분에 치중된 감이 있습니다.

 

 

그 무거움을 다룰 자신이 없다면 다루지 말아야 할 소재라고도 생각해요.

여기에서 독자로서 아주 조금 화가 나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나, 7년의 밤 추천드립니다. 이 소재를 쓰려면 최소한 이정도 역량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약. 재미도 감동도 없다.

여기에서 재미와 감동 사이는 and가 아니라 or입니다.

둘 중에 아무것도 없어요.

남는 게 없음.

    

 

치유 장르는 절대 아닙니다.

굳이 쓰자면 수긍,

(우주에 마음의 은신처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이미 치유나 회복은 아닙니다.

여전히 상처받았고 현생에서 극복할 여지같은 걸 알아버린 수긍입니다.)

  

  

그렇다고 대승적 관용이나 포용이 있는 것도 아니예요.

엄마한테 어떻게 상처받았는지

엄마가 얼마만큼 나쁜지

조금 이야기 하거나, 지나가며 이야기 하거나,

대놓고 왕창 이야기 하는 게 다임.

  

  

상처가 주제라면 어느 정도 할 수 있겠죠.

그런데 분량이 많아요.

할애를 많이 함.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이게 다임.

  

  

분명히 해둘 건,

엄마한테 받았을 상처가 실화라 했다면 대단히 공감할텐데..

소설로서 문학적으로 와 닿는 건 없었어요.

그래, 참 힘들었겠다. 외에는 없었어요.

  

  

까페 같은데 올리셨다면 함께 폭풍 분개+ 위로+공감해 드렸을 텐데,

돈주고 책으로 사읽고 싶진 않아요.

  

  

"눈부신 성취"란 카피는 거의 사기고,

치유라는 마켓팅은 농축산물 원산지를 속인거에 가까운 배신감이 듬.

 

 

소위 될만한 키워드로 독자를 기만한 상술이라고 생각해요.  

  

  

이것도 아니면 주인공이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치유 및 눈부신 성취를 했는데

독자에게만 안 알려준 거임.

  

  

마케팅팀이나 심사위원에게만 몰래 알려주고.

  

  

혹시 귓속말로 알려줬나요?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수동, 안주 장르임.

수동, 안주 장르가 훌륭한 소설이 될 수 없다는 건 아니지만,

키워드로 내세운 눈부신 성취, 치유는 암시조차 없었어요.

  

  

우주를 가로질러 봐야지. 내 세상이다.

이걸로 급하게 마무리하고 치유,

눈부신 성취라고 퉁 치려고 하는 거면 마케팅팀이 너무 양심이 없는거임.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치유, 성취물이라는 허위 광고를 하지 말던가

내용을 수정하던가 택일했어야 해요.

  

  

(저렇게 마무리하기 위해서인지

남편이 밑도 끝도 없이 암흑물질로 우주 이동이 가능하다고 함.

처음부터 우주에 관심 좀 가져주던가...)

  

  

여튼, 주인공은 끝까지 골골대며,

애매모호하게 아팠던 거

기침하고 갈비뼈 금 갈 정도로 구체적으로 아픔으로서

캐릭터가 약골이라는 건 명확하게 드러냈고요.

 

    

굳이 세로토닌을 안 먹는다던가,

사고 나서 그렇게 아픈데 엑스레이 안 찍은 것도 이해가 되진 않았어요. =

  

  

(세로토닌이라도 먹었으면 '오만' 보 양보해서 그래 이게 치유라는 노력이라고 칩시다.라고 했을듯요.)

  

  

= 자기 자신을 방치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내가 살고 싶지 않다던가 고통받고 싶다던가

나는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던가

사실은 겁이 많아 변덕이 죽끓는듯 하다던가

나는 열렬한 비과학 테라피스트 신봉자라던가 이런 이유도 아니었어요.

 

 

덧붙여 주인공은 자기한테 관심이 그 누구보다 많은 부류예요.

시간이 많거든요.

여하튼, 맥락이 없어요.

  

  

재미있던 부분도 있었어요.

  

  

12장은 엄마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까던걸, 쌓인 게 많은지 '드디어' 신랄하게 깝니다.

이 역시도 엄마가 나에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지만, 역시 없었구나. 정도.

 

 

이건 커뮤니티 올리면 댓글 좀 달렸을 듯.

 

 

주인공이

엄마가 호야라는 이름의 화분을 주고 가서 의미 있는 건 줄 알고 감동했는데,

아니었음.

  

  

12장이면 거의 막바지인데 드디어?

네 그렇습니다. 두 모녀는 여전해요.

주인공이 여전히 맺힌 것도 많고, 할 말도 많을 뿐.

  

  

3개월 때 기억한 부분은 실소했어요.

환상이나 망상은 아니고,

갑자기 초인물이나 판타지로 장르 변경도 아니고,

알고 보니, 반전. 이것도 아니고.

  

  

그래도 과감하긴 했음.

막 던진 감이 있기는 하지만요.

가족과 아웅다웅 홈드라마를 보며,

김치찌개를 먹다가 우주 운석을 건져올린 기분입니다.

 

    

차라리 우주를 안 건너고

이게 삶이고 애도 키워야 하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수긍하는 끝을 맺었으면,

  

  

전반적인 맥락도 통하고 오히려 소설로서는 더 가치 있었을 것 같아요.

  

  

은신처를 가기 위해서 잘 때 우주를 건너가겠다고 한건 이해가 되지만, =

(그 우주 은신처 자체가 뜬금없었어요.

단편이라면 이 부분이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 280페이지를 마무리하면서 갑자기 우주 은신처를 가고 싶다고요?)

  

  

= 그냥 그런 캐릭터니까.

여러모로 고통받지만, 그냥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캐릭터..

모든 캐릭터가 성취를 이루거나 치유해야 하는 건 아니죠.

그냥 곪아가는 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건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기승전결이 있어 열린 결말도 아니고...

 

 

트라우마 있는 분의 육아힐링물인가?

그러기에는 로야라는 딸이 너무 가끔 나옵니다.

  

  

덧붙이는 글.

  

  

만일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면,

소설을 쓸 게 아니라 수필을 쓰셨다면 이해나 공감, 격려를 받으셨을 것 같아요.

 

소재의 출처 여부를 떠나 철저하게 소설을 보는 관점으로 이 글을 썼고,

    

위에 쓴데로 진솔한 수필의 형식을 빌렸다면,

치유하든 눈부신 성취를 이루셨든

성취와 치유가 사실이든 아니든 전혀 상관없이

격려와 위로를 보냈을 거예요.

 

수필이 모든 걸 샅샅이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으니까요.

그건 정말로 글쓴이의 마음에만 있다고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이 '소설'은 그렇게 강조한 치유나 눈부신 성취는 암시조차 없고요.

치유나 눈부신 성취를 하지 않더라도 밥 먹고 애 키우고 사는 건 그냥 누구나 다 하는 거예요. 다른 분의 말대로 카페나 블로그에 올리셨으면 더 공감 갔을 글입니다.

 

 

소설가는 사실,

어떻게 쓰던 잘못이 없어요.

이렇게 써도 저렇게 써도 힘들게 쓰셨을 거니까요.

 

마케팅팀이 89.9%는 잘못했고,

10%는 이 글이 왜 대상인가 의문이 드네요.

 

작가님은 0.1%를 빼먹는 실수가 있으셨던 것 같아요.

해당 소재에 대한 고민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결말이나 진취에 대해서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

 저 광고 문구는 당연히 수정해야 했겠지만요.

백번 양보해도 살던대로 살아가는 걸 표현하는 워딩은

눈부신 성취는 절대 아니지 않겠어요?)

 

자기가 상처입고 고통받았던 일에 대해서 탁탁 늘어놓는 거는 독자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작가는 좀 더 고민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실화속의 본인이 덜 고통받았고, 덜 얽매였고 덜 생각했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에요. 오해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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