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집을 여는 표제작 <야운하시곡>의 분위기는 무겁고 진중하다. 하늘 아래 적수가 없다는 사혈공에게는 아이가 있다. 깊은 병에 이르러 짧은 생을 마감한, 가엾은 휴를 살릴 방도는 은원에 얽혀 결국 무용지물이 된다. 돌아온 사혈공에게 늑대가 휴의 무덤을 찾아주는 장면이 오래 남는다.찌질한 사내의 우유부단함이 낳은 결과는 <호식총을 찾아 우니>에서 볼 수 있다. 호랑이에게 먹힌 사람들의 무덤인 호식총을 망가뜨린 수찬은 자신이 데리고 도망친 아이 난아와 닮은 아이를 보고 따라간다.자신을 해하려던 청년이 창귀라는 것을 듣고 죽은 아비와 만났을까 염려해주는 마음이 애잔하다. <로부전>은 7편의 단편 중 가장 밝은 분위기의 작품이다. 욕하는 임금님 떄문에 절로 웃음이 터져나온다. 약현의 글 '로부전'을 두고 임금과 벌이는 언쟁이 아주 좋다. 곤궁한 삶을 잠시 잊고 위로가 될 수 있는 잡문을 쓴다는 약현의 말이 특히 와닿는다. 이 책에 담긴 7편의 글이 바로 그렇다. 양귀비가 나오는 <다시 쓰는 장한가>도 막힘없이 읽힌다. 개인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비극에 휘말린 여인들의 이야기다. 이어지는 <서왕>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든다. 제자리 걸음 같은 느낌의 문체가 묘한 느낌을 준다.마지막 작품인 <은혜>는 옛이야기 여우누이를 가져와 색다르게 풀어냈다. 익숙한 이야기라 읽는 재미가 가장 좋았다. 짐승보다 못한 사람, 사람보다 나은 짐승은 현실에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삶을 넘어서는 드라마나 영화나 소설이 드문 이유다. 7편의 이야기를 읽고나니 오랜만에 솜씨 좋은 백반집을 알아가는 기분이다.
(황금가지 지원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