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본체를 깨달으면 나와 이 세상은 진실로 하나가 된다.
이원성을 초월하면, 그 어떤 정체성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상황과 관계와 수용을 항상 관할 수 있게 되고 우주와 하나가 된다.
나의 문제가 즉각적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세상이나 인류의 문제가 즉각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주의(-ism)로 특징지어지는 사고로는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수 없다. 영적으로 맑고 성숙한 성인이라면 ‘-주의’를 버려야 한다. 이원적인 생각을 초월한 마음으로 돌아가라. ‘-주의’ 상자를 버리지 않는다면 이 문명은 비참하게 퇴락할 것이다.
직선적인 과거 현재 미래는 허상이다. 마음 밖에 존재하는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과거, 현재, 미래는 없다. 시간과 공간은 집단으로서 우리가 가진 업, 인류의 모든 행동과 말과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시공을 만들고 경험하고 있다.
무위는 좋고 나쁨이라든지 운명이라든지 오온에 기초한 정체성을 만들지 않음을 뜻한다.
이원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오온에서 자유로워지며 마음의 장애에서 벗어난다. 이것을, 이 초월적 지혜를 ‘오직 모를 뿐’ 또는 ‘모르는 마음’이라 부른다.
과거, 현재, 미래와 씨름하면서 과거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이 순간을 맑게 하십시오.
일체의 불필요한 생각을 끊어낼 때 진정한 지혜와 자비가 나타난다. 우리의 실체를 깨닫는다고 끝이 아니다. 사실 실체를 깨닫는 것은 자연과 생명체, 또는 온 우주에 더 이상 고통을 일으키지 않는 삶의 시작을 뜻한다.
선업은 나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괴로움을 없앤다는 뜻이다. 악업은 나 자신과 세상에게 더 큰 괴로움과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만든다는 뜻이다.
타인을 위한 기도가 최고다. 타인을 위해 기도하면 ‘나’가 사라진다.
이 ‘모르겠다’는 걸 지니면 일체의 장애가 사라진다. 장애가 없으면 두려움도 사라진다.
집착하지 않으면, 어떤 정체성으로 인해 망상을 피우지 않는다면, 어리석음도 없고 이원성도 없어 장애와 두려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