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있어서 구조란 작품을 창조하는 사람이 재료를 논리 정연하게 조직하는 방식입니다. 다른 예술과 다를 바가 없지요. 다만 여타 예술과의 차이점이라면 음악의 재료는 유동적이고 다소 추상적인 성격을 띤다는 점입니다. 음악의 본질이 그러하기 때문에 구조를 쌓아 올리는 작곡가의 책무는 이중으로 난해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P163
오히려형식은 작곡가가 곡을 쓰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품은 전제에서 비롯되어살아 움직이며 서서히 성장해가는 유기체로 바라보는 관점이 올바르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모든 음악 작품은 저마다 독자적이고 고유한 형식을 가진다‘라는 귀결이 자연스레 이어지겠지요. 그러니까 음악의 내용물이 형식을 결정하는 셈입니다.- P164
기존 형식에 안주하는 경향을 곧 음악의 취약점으로 파악한 페루치오 부소니 Ferruccio Busoni(1866-1924)는 음악의 미래는 미리 정해진 형식에 과잉 의존하는 작곡가들의 굴레를 끊을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을담은 팸플릿을 쓰기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과거 및 현재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역사가 물려준 형식 유산에 기대는 쪽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음악 구조의 등장은 아주 드문 현상이 되어버렸죠.- P166
그렇다면 기억해야 할 점은 다음의 두 가지가 될 것입니다. 첫째, 형식적 틀의 일반적인 윤곽을 알아두십시오. 둘째, 작곡가의 악상이 담고있는 내용에 따라 그 일반적인 윤곽이 독특하고 개성적인 방식으로, 즉오로지 해당 작품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방식으로 변형될 수도 있다는점을 유념하십시오.- P167
2부 형식의 좋은 예가 되는 작품으로 프랑수아 쿠프랭FrançoisCouperin (1668-1733)이나 도메니코 스카를라티Domenico Scarlatti(1685-1757)의 곡들을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음반은 하프시코디스트 반다란도프스카Wanda Landowska(1879-1959)의 것을 추천합니다.- P178
초기 론도의 훌륭한 모범으로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 9번 D장조)종악장을 들 수 있습니다(187-188쪽). 187쪽의 악보 하단, 론도 주부가재현되는 지점을 앞선 주부와 비교해보면 다소간의 변형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공간 제한 때문에 다 싣지는 못했습니다만, 론도 주부는 되풀이될때마다 조금씩 바뀝니다). 덕분에 몇 번을 거듭해서 등장하더라도 흥미로운 들을거리가 조금씩 더해집니다.- P186
반면 여기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두 번째 의미로서의 변주, 즉 형식 기법으로서의 변주입니다.
음악사를 놓고 볼 때 변주 원리는 그 연원을 거슬러 짚을 수 없을정도로 오랜 발자취를 가집니다. 변주 원리를 포함하지 않는 음악 예술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말이지요.- P191
모든 파사칼리아 곡의 시작은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베이스 성부가 주제를 반주 없이 연주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주제는 이어질모든 변주의 근간을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듣는 이의 뇌리에 확고하게 각인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따라서 통상적으로 앞에 오는 몇차례의 변주는 주제를 베이스에 확고하게 깔아놓고 가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러는 동안 상성부는 서서히 추동력을 붙여나가고 말이지요.- P198
푸가 형식은 다시 네 가지 주요 형식으로 가를 수 있습니다. 첫째 엄밀한 의미의 푸가, 둘째 콘체르토 그로소, 셋째 코랄 전주곡, 그리고 넷째모테트와 마드리갈입니다. 대위법적 작법이 오로지 이들 형식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변주의 원리가 그 어떤 형식에도 적용 가능한 것이듯, 대위법적 텍스처 역시 그 어떤 형식을 가리지 않고 대뜸 등장했다가 사라지곤 합니다. 그러니까 음악을 들을 때는항상 폴리포니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긴장의 끈을 풀어선 안 됩니다.- P215
카논은 모방을 한층 치밀하고 정교하게 적용한 형태입니다. 모방이음악의 국지적 차원에서 기능하는 장치라면, 카논은 처음부터 끝까지 곡을 일관되게 지배하는 형식 구조라고 보시면 됩니다.- P217
음악이 구사하는 대위법을 들어 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이처럼 다양한 장치들을 이해할 수 있는 깜냥은 푸가 형식을 구체적이고 총명하게 감상할 수 있는 핵심 발판입니다.- P221
푸가 주제가등장할 때는 다른 모든 성부에 우선해서 귀에 꽂히는 게 일반적이지요.
따라서 푸가에서는 주제를 단단히 기억해두는 게 무척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푸가는 예외 없이 주제만을 무반주로 제시하면서 시작되기 때문에 조금만 유념하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게다가 푸가 주제는 대부분이 두세 마디 정도로 길이도 그다지 길지 않은 편이고, 모두冒頭와 매듭을 분별해내기도 쉬운 편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두 권에 담긴 마흔여덟 개 푸가 각각의 주제만을 한번 귀 기울여 들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P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