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이야기
How to Hold a Cockroach
내 삶의 불청객들을 기쁘게 맞이하는 법
바퀴벌레를 싫어하는 ‘나’는 있지만, 바퀴벌레를 싫어하는 ‘이유’는 없다는 것을 깨달은 어느 날. 그 순간 이후 진짜 나와 나를 둘러싼 시공간과 삶의 가치들에 대해 의문을 갖고 제대로 질문하며 다시 받아들이는 과정이 동화처럼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시처럼 하나, 하나 나에게도 새롭게 온다.
주변의 시선, 의미와 가치에 대한 압박, 관계들. 그 속에서 내가 세상을 보고 인식하는 방법. 불안을 기반으로 한 회피 혹은 극복. 그런 감정들로 내 인생의 많은 이름과 가치들을 제대로 보지도 누리지도 못 한다는 게 얼마나 안타깝고 아쉬울까. 다양한 가능성들을 죽음에 이르러서야 보드라운 눈으로, 놓친 것들에 대한 미학으로 칭송하고 말건가. 소년의 “너는 뭐야, 정말로?” 라는 질문을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대신해 묻듯이 살아야한다. 동전도 양면이 있는데 삶은 얼마나 다양하고 풍성하겠나. 영영 모르고 지날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내 삶의 불청객들을 기쁘게 맞이하는 방법은 결국 내가 선택하는 것. 대상을 어떻게 바라볼 지도, 어떻게 의미를 두고 남길 지도, 다음 손님 역시 기쁘게 맞이할 손님이 되게 할 여지도 모두 내 선택에 달렸고,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있는 그대로, 내 의미로. 그렇게 그것이 그저 사실이 되도록.
덧붙이자면, 내 경우에는 바퀴벌레보다 쥐다. 미키마우스 새앙쥐가 아니라 시궁창 쥐. 왜 그렇게 쥐가 싫을까. 여태까지 너무나 오래, 자주 공포에 가까운 나와 쥐에 대한 고찰이 있었고, 다행히 결론은 있다. “그 매끈한 표면과 긴 꼬리가 너무 징그럽다. 그래서 싫다.” 싫은 이유가 있기야 한데, 나는 왜 이렇게까지 쥐가 싫은가 생각하면 아직도 이유가 조금 모자라다. 징그럽다로는 부족한 듯해 더 들여다본 내 기억 속 쥐와 관련된 몇 장면을 돌이켜보았다. 아울러 내 삶의 다른 이름들과 가치들의 장면들도 떠올려본다. 미래의 눈으로 과거와 현재의 그것들을 보기로 하는 결심과 노력. 어떻게 보듬을까, 나도 그들도. 어떻게.
관계와 삶과 등등에 대해 짧은 듯 깊고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