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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님의 서재
  • 부적격자의 차트
  • 연여름
  • 13,500원 (10%750)
  • 2024-12-25
  • : 1,325

다섯 번의 세계대전, 이상 기후, 리누트 바이러스 등으로 인간 멸종 상황에서 인류는 지구 위 잿빛 방벽과 투명한 돔에 둘러싸인 인구 8만의 중재도시에서 세대를 이어간다. 정해진 생애한도, 사라진 감정과 단어들, 상상과 꿈은 금지되고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조차 시스템의 오류로 치부되는 시스템. 중재자는 생존이라는 ‘당시의’ 유일한 목표를 위해 구성원에게 ‘여러 가지가 소거된 삶’을 제시하고, 그 삶에 익숙해진 그들은 생존과 삶을 다시 한 번 선택할 순간을 맡게 된다. 레드를 통해. 세인과 이폴을 통해. 그리고 또 다음의 누군가를 통해.

 

‘생존’을 위해 인류가 무엇을 버리고 포기하는지를 짚음으로써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조건’과 ‘산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 소설, ‘산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 소설, 『부적격자의 차트』.

 

나는 생존을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

조금 먼 기억으로는 몇 년 전 이맘 때 COVID-19 펜데믹을 떠올려본다. 그때 가장 먼저 포기했던 것, 그때 가장 소중했던 것. 그때 나는 어느 정도의 자유와 의지를 기꺼이 포기하면서 우리 가족과 주변의 건강과 안심을 얻었다. 이 소설 속의 리누트 바이러스를 상상할 때도 어렵지 않게 다시 비슷한 선택을 할 내 모습이 떠오른다. 생존이 자유나 의지, 꿈보다는 분명 우선하는 것이라 믿으니까.

 

그러나, 중재자는 분명히 말했다. “최초의 제안을 기억하라.”

중재자는 빅브라더가 아니다. 언제든 시스템은 다시 조정될 수 있음에도 인류는 모험하지 않기로 했고 안전함에 만족하기로 한 것이다. 최초의 제안을 기억하라는 말은 기억하지만 최초의 제안은 잊혀졌다. 그것은 오류의 범위였을까.

 

인간이 자유와 존엄을 갖고 정신적으로도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 자신의 삶을 장악한다는 것에 대해 그것을 생존 자체의 무게와 비교하거나 가치로 따져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벽 너머를 이미 본 사람에게 벽 너머에 대해 들려오는 유언비어는 너그러이 웃을 수 있는 농담 일 뿐.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산다. 그 이야기가 새삼, 개인적이라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것, 나를 구분하고야 마는 최후의 그것이 무얼까. 그것은 내 속에 나만 담고 있는 아주 사사롭고 소소하지만 굉장히 특별한 조합으로 이룬 “나”. 우리는 그걸 보고 싶고 보여주고 싶고 이해받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 그런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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