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2년 7월 2일 첫 출항을 한 아름다운 쾌속 범선 라 벨라. 지도를 만들기 위해 직접 가서 보는 여행을 하고 회귀선을, 적도를 넘기도 하며 13일 동안 표류하다 발견한 곶 ‘희망봉’에도 가 본 탐험선. 아쉽게도 아메리카 대륙 발견에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아메리카 너머를 찾아 떠나고 태평양을 태평양이라 부르게 된 것은 라 벨라의 모험심 덕분이다. 라 벨라가 북극성을, 남십자성을 보며 탐험한 흔적이 세계지도가 되고 지도를 더 손질하기 위해 또 항해하며 다음의 더 나은 항해를 위해 지도를 손질하던 라 벨라. 라 벨라가 두루 항해한 지구에서 마지막 목적지 라플란드를 끝으로 라 벨라는 범선들의 고요한 묘지로 들어가 그 너머를 본다. 그 전 시대 바다를 누빈 범선들과 함께.
이 책은 범선의 탄생과 죽음의 과정 안에 지구와 별과 지리에 대한 정보를 지식이 아닌 지혜로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그 순간의 주인공이 사람이 아닌 배라는 점이 파도를 넘고 표류를 하면서도 별을 보며 버티고 지키는 용기를 준다. 탐험을 하기에 규모가 크지 않아도 제 몫을 찾아 해나가는 모습, 풍파와 풍파와 풍파뿐이더라도 다시 떠나고 또 떠나면서 스스로의 한계를 넓히고 세상은 좁히는 의지에 감탄도 나온다. 20년 만에 돌아온 개정판이라는데 100페이지 가량에 올 컬러, 아이들과 같이 읽기도 좋고 읽어주기에도 좋으며 선물하기에도 좋다. 지도 살피는 재미도 있고 표지와 띠지도 물론이거니와 삽화의 컬러감이 예술이다.
첫 출항 무렵 겁주며 얘기하던 노인 선박의 모습이 된 라 벨라는 말한다. “네게 보이는 것을 얘기해다오, 그럼 네가 어디 있는지 내가 말해줄 테니…….” 과연,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어디쯤에 있는 걸까. 어쩌면, 내 아름다운 시간이 정박한 채 그냥 흘러가고 있지는 않나.
읽기 나름의 멋과 맛이 넘치는 항해일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