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식소매상의 중력
타치오 2018/08/16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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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역사
-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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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 혹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흔히들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려는 욕망이 인류의 본성임을 그 근거로 들곤 한다. 이 책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기록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러기 위해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대표적인 역사서를 소환한다.
먼저 역사의 ‘아버지’ 혹은 ‘창시자’는 누구일까를 따져보는데, 희랍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를 든다.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페르시아 전쟁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기록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열악한 소통환경과 정보취합의 어려움 그리고 기록을 남기는 자체도 힘들었던 2천여 년 전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두 사람 모두 정말 훌륭한 역사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을 통해 문명의 충돌을 보았고 따라서 그 관점은 세계사라는 거시적 관점이었던 반면,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경험하면서 그리스 민족사라는 미시적 관점을 견지했다. 이들이 역사가라 칭송받을 수 있는 이유는 역사적 사건을 한 쪽 시각에 치우쳐 기술 한 것이 아니라 사건의 주체들을 공정하게 다루었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당시의 환경으로 미루어 모든 사실을 제대로 취합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므로 저자의 상상력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이미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관과 카의 역사관이 충돌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에드워드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대학을 보낸 세대이다.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관과 비교하며 역사와의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한 세대로, 시대적 사명감을 거부하지 않았다. 저자는 자신의 역사관이 어떤지 밝히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그런 역사관이 이 책 곳곳에 스며있음을 감출 수는 없는 것 같다. 사료와 고증에 충실한 실증주의 역사관, 애초에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을 기술해야 한다는 랑케의 역사관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카의 역사관은 공존하기 어렵다. 공자의 춘추필법은 그 시대 사관의 주관적 견해가 그 시대의 사상과 어우러지면서 정치공학적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으므로 랑케필법의 또 다른 대척점을 이룬다고 하겠다.
마르크스의 역사관은 기록이라는 측면보다는 사회발전 법칙과 시스템의 일부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차원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박은식의 <한국통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그리고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 등은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보여준 사대주의 역사관을 거부하고 우리 민족을 중심에 둔 자주적 역사를 기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이라고 신채호는 말한다. 비아와 맞서 투쟁하기엔 너무나도 허약했던 조국. 외세의 침탈에 의해 사라져버린 나라는 역사마저 점령군에 의해 누더기가 되고 만다. 이런 가운데 이들의 민족사에 대한 연구와 노력은 그 방법이 어떤 것인가를 떠나 당시 위축되어 있던 나라 잃은 국민들에게 자부심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을 것이다. 한 줌 권력을 위해 일본군을 끌어들여 같은 민족을 짓밟았던 동학혁명 당시의 권력자들은 역사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이 다름 아닌 욕망임을 보여주는 것 같아 몹시도 가슴 아프고 씁쓸했다. <한국통사>의 동학혁명에 대한 시선은 그나마 위안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슈펭글러나 토인비 그리고 헌팅턴 등은 민족사나 지역의 역사 혹은 세계사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문명의 역사를 연구하고 기술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는 인류사를 도전과 응전의 역사로 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토인비의 성장과정과 학문적 이력 그리고 엄청난 특혜가 <역사의 연구>라는 대작을 낳게 된 배경이었다는 점은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다.
1996년 출간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은 베스트셀러 였으며 또한 스테디셀러였기도 하다. 헌팅턴은 문명이란 '사람들에게 동질적 정체성과 귀속감을 가지게 만드는 총체적 생활방식'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런 관점으로 문명권을 여덟 개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저자는 이 책을 역사책이라기보다 국제정치학 책이라고 평가한다. 세계인구의 15% 정도를 ‘평화권’ 그리고 나머지를 ‘분쟁권’으로 나누고 그 분쟁의 원인을 ‘단층선 분쟁’으로 설명하는 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저자는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사실 헌팅턴의 이런 주장은 생명이 길지는 못했다. 일본을 독립된 문명권으로 분류한 것은 동북아 일대를 중화권으로 묶은 것과 비교할 때 어색한 것이었으며 납득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도 없다. 또한 이 문명권 밖에 존재하는 문명에 대해 편견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와 유발 하라리는 역사를 보는 시각을 좀 더 넓혀 인류사라는 관점으로 인간을 본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되기까지 인류는 어떤 변곡점을 거쳤으며, 무엇이 인류를 지금처럼 만들었는지, 무엇이 인류의 발전과정을 다르게 만들었는지 여러 가지 자료를 들어 설명한다.
역사 기술을 위한 역사가의 재능과 노력, 춘추필법과 랑케필법 그리고 카의 역사인식. 이런 요소만으로 역사를 재단할 수는 없다. 인류는 역사를 기술하기 위해 어떤 방식의 작업을 해 왔는지 그리고 역사를 일정한 틀 안에서 정의하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 것인지를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다. 정당성이 부족한 정권은 역사의 물고를 인위적으로 돌리려한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도 이는 증명된다. 역사의 해석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최은영의 표현을 빌자면, 유시민은 중력이 매우 큰 글을 쓰는 작가이다. 독자를 당기는 힘은 간결한 문장이나 절제된 표현만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엄청난 독서량과 성찰의 힘이 아닐까 추측만 해볼 뿐이다. 저자는 말한다. 역사는 사람이 만들지만 모든 사람이 역사에 흔적을 남기지는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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