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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ubus84님의 서재
  • 여우와 나
  • 캐서린 레이븐
  • 17,820원 (10%990)
  • 2022-10-06
  • : 372

생물학자 캐서린 레이븐이 쓴 자연 에세이 <여우와 나>를 읽었다. '여우'라는 동물이 연상시키는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다. 전래 동화 속 여우는 교활한 속임수를 써서 다른 동물을 골탕먹이고, 동물원 우리 안에 지내는 여우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외모도 그리 귀엽지 않다. 이런 여우와 인간인 저자는 어떤 관계를 맻었던 것일까?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학대 당했던 저자는 스스로 사회와 단절되기로 마음 먹고, 로키 산맥의 인적 없는 땅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홀로 생활한다. 그러던 중 한살 배기 여우가 엄마 여우를 따돌리고 저자의 오두막에 들어선다. 저자는 생물학자였기에 여우를 생물학적 관찰 대상으로 여길 법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는 애초에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우를 인격화하는 태도를 부정한다. 그저 오두막 내에서 여우가 어느 정도 활동할 수 있도록 허락할 뿐이었다. 매일 오후 4시 15분이면 여우가 오두막을 찾아 왔다. 그러면 저자는 여우와 함께 <어린 왕자>를 읽었다.

저자처럼 홀로 야생에서 사는 사람들이 간혹 방송에 등장한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본 적은 없어서 올바르게 이해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왠지 고독하고 쓸쓸하고 불안해 보였다. 그러나 이 책 <여우와 나>에 붙은 부제는 '한없이 다정한 야생에 관하여'이다. 이 문장 그대로, 책속에 등장하는 야생과 저자의 삶은 그리 쓸쓸하지도, 고독하지도 않았다. 책을 집필하고 연구하는 저자는 외딴 지역에 지은 오두막에서 야생과 관계를 맻으며 조금씩 성장한다. 여우는 20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오두막에서 시간을 보내며 저자의 온기를 느낀다(아마 그랬을 것이다). 다소 무미건조하지만 조금은 가슴 설레는 두 생물의 만남이 오래 지속되었다면 좋았겠지만, 산불로 인해 여우는 목숨을 잃는다. 이 결말 마저 너무도 야생의 속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특히 인상적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SNS 방식으로 여우와 관계를 맻었다면 저자는 여우 사진을 수십 장 찍어 책에 수록하고, 여우에게 귀여운 이름을 붙이고, 어쩌면 오두막 옆에 아예 여우집을 지어 계속 여우가 머물도록 만들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 남은 여우의 흔적은 마지막에 수록된 여우 사진 단 한 장 뿐이다.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여우, 그 여우가 세상에 머물었음을 말해주는 단 한장의 사진. 진한 여운이 남았다. 가슴 뭉클한 자연 에세이를 읽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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