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필립스가 쓴 책 [인간의 흑역사]는 한 마디로 재미있고 유용한 책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웃음이 픽 터지는 구절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게다가 내용은 어찌나 교훈적인지. 우리는 흔히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 '지혜로운 사람'이라 말한다. 학자 유발 하라리는 신이 된 인간이라는 의미로 '호모 데우스'라는 학명까지 붙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인간은 한 없이 어리석고 하찮은데다 욕심만 많은 동물이란 것을 깨닫는다. 한편으로는 지구와 자연, 다른 동물종에게 민폐인 존재이기도 하다. 책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인간이 지닌 다양한 바보스러운 구석과 이 어리석음으로 인해 발생한 믿을 수 없는 역사 속 사건들이 담겨져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해 보이지만 편견을 만들고 끊임없시 실수를 유발하는 인간의 뇌, 전쟁과 식민주의, 외교사와 과학사에 얽힌 흑역사,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진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내용은 '신기술에 열광하다'라는 장이다. 인간 과학사에 있었던 흑역사들이 소개되는 장이다. 소련의 한 과학자가 발견한 '중합수'. 기존에 알려져 있던 물의 성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큰 화제를 낳았었다. 저명한 학술지 [사이언스]에도 개제된 중합수는 군사적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며 미국 CIA 요원들이 직접 조사하기에 이르렀다. 결론적으로 중합수의 정체는 '더러운 물'이었다. 물에 불순물이 많이 들어있어서 물리적 특성이 우리가 알고있는 '물'과 다르게 측정되었던 것뿐이었다. 이 이야기를 읽으니 왠지 내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한 실수로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에 좌초하고, 나사 과학자들은 우주선을 화성 표면에 추락시켰다. 실수의 연속. 이런데도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자 '호모 데우스'라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며 재미와 교훈만을 얻고 책장을 덮기엔 왠지 아쉽다. 나는 많은 사람이 [인간의 흑역사]를 통해 겸손함을 다시 한 번 마음속에 새겼으면 한다. 온실 가스로 인한 이상 기후는 결국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인간의 어리석음이 초래한 일이다. 과학 문명의 발전을 내세우며 '인간은 위대한 존재다!'라고 외치기 전에, 우리가 그 동안 어떤 잘못을 저질러 왔는지, 이런 오류와 실수를 어떻게 만회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야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