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로 유명한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본인의 주요 무대인 추리 소설이 아닌 다른 분야의 책을 들고 나왔다. 제목은 사이언스. 엔지니어 출신 작가 답게 본격적인 교양과학책을 한 권 낸건가? 하는 궁금증으로 책을 펴 보았는데 표지에서 의미심장한 문구가 발견된다. '과학책이 아닙니다. 그냥 재미로 읽어주세요.' 어떤 책인지 더욱 궁금해진다.
목차를 살펴보면 과학책인 것 같긴 한데...싶은 느낌이다. 유사 커뮤니케이션, 과학기술, 수학, 하이테크, 이공계, 등등의 단어가 눈에 띤다. 그런데 내용은 과학책이라 하기엔 조금 애매하다. 간단히 말해 이공대 출신 작가가 쓴 가벼운 에세이로서 군데군데 과학이라는 양념이 뿌려진 책이다. 과학 기술이 상세히 소개되어 우리에게 과학 지식을 전달하려는 책은 절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단면을 소설가 특유의 통찰력으로 바라보며 과학을 전공한 작가의 관점이 소개된다. 따라서 절대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다.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책도 좋아하게 될 것이다. 특히 추리 소설 작가이기에 히가시노 게이고만이 쓸 수 있는 그러한 글들이 좋았다. 과학기술이 추리소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소설을 쓰는 도구는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과학기법, 이를테면 DNA 감정과 같은 기술은 어떻게 발전했는지, 그리고 소설 창작을 위해 취재를 나갔다가 보고 듣고 겪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 뿐만 아니라 추리소설 팬들도 흥미롭게 읽을만한 내용이었다.
나는 특히 하나의 작은 글감을 발견하고 그 것을 재미있게 풀어내어 하나의 글로 완성시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쓰는 방법에 특히 눈길이 갔다. 이 책에 실린 주제는 그리 거창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하는 동안 공부하고 겪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그저 흘려버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의 글감으로 발전시켜 멋진 글로 완성시켜내는 것이다. 게다가 남들과 완전히 다른 차별화되는 시선...이라기 보다는 아주 한 끝 차이로 살짝 다른 시선에서 보는 작가의 시야도 발견되었다. 허무맹랑한 상상력이라기 보단 귀엽고 톡톡튀는 상상력이란 이름을 붙이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 추리소설의 팬, 그리고 그냥 가볍게 재미있고 잘 쓴 글을 휙 읽으며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