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공주 해적전
신라 장보고가 망하고 15년이 지난 때, 한주 지방에 사는 장희의 이야기이다.
장희는 장보고 무리 사이에 끼여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심부름을 하며 밑천을 모았으나 탕진하고, 당장 먹을거리가 없게 되자 돈을 벌러 거리로 나섰다가 한수생을 만나게 된다.
한수생이 쫓기게 된 사연은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보는 듯하다. 한수생은 개미고, 마을 사람들은 베짱이. 다른 점은 베짱이는 개미에게 동정(?)을 바랐지만, 마을 사람들은 한수생을 죽이고 식량을 빼앗으려 든다. 여기서 마을 사람들의 논리가 상당히 이기적이고 무섭다. 범죄의 합리화? 정당화?
그렇게 마을 사람들에게 쫓기게 된 한수생은 무슨 문제든 풀어준다는 장희를 만나 목숨을 구하게 된다. 처음에 장희는 한수생을 속여 은팔찌만 가로채고 혼자 떠나려고 했으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그와 함께 배를 타고 도망가나 관군들이 쫓아온다.
관군에게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하는 한수생과 이미 마을 사람들에게 뇌물에 매수되었을 거란 장희. 관군은 장희의 말처럼 한수생을 공격했고 우연히 만난 대포고래 해적단을 만나 관군으로부터는 목숨을 건진다. 그러나 그들에게 닥친 위기는 이게 끝이 아니었으니... 이 책의 재미는 지금부터다.
이 이야기는 하나의 어려움에 부닥치게 되면 다른 어려움으로 해결하고, 또 그 어려움은 또 다른 어려움으로 해결하는 지혜가 돋보인다. 특히 장희의 지혜와 뛰어난 임기응변이 돋보이는 장면이 두 번 나온다. 조세와 공물을 싣고 가는 관청의 배를 만났을 때와 마지막, 상잠 장군 패거리들에게 꼼짝없이 죽을 위기에 놓였을 때다. 이 부분을 자세하게 풀고 싶지만 그러면 이 책을 읽는 묘미도 사라지겠지. 그거야말로 엄청난 스포라 할많하않.
고전소설을 읽을 때의 문투가 느껴지기도 했고, 고전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빠른 사건 전개(디테일 묘사 없이 요약적 사건 전개?)가 어려움을 또 다른 어려움으로 극복하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보여준 것 같다.
두껍지 않은 책이라 읽기에 시간적, 분량적 부담이 적다. 위기를 위기로 극복하는 과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장희의 배포와 지혜를 엿보는 재미가 이 책의 매력이다. 또한 이 시대에 접목해 생각해봄 직한 장면들도 있다. 자신의 어리석음과 잘못은 인정할 줄 모른 채 나라 탓만 하는 인물이나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며 무리 지어 권력을 형성하는 인물, 모종의 세력과 결탁하여 세금을 빼먹으려는 인물. 그런 사람들의 말을 보며 마치 고전이 주는 교훈을 만나는 듯해 의미 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