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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dde님의 서재
  • 관통당한 몸
  • 크리스티나 램
  • 19,800원 (10%1,100)
  • 2022-03-02
  • : 697




“세계의 전쟁터에서 여성의 몸은 여전히 전장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없었다면 이 문장이 이렇게 생생하게 와닿았을까.

우크라이나가 아니라도 현재 진행중인 전쟁은 얼마든지 있는데, 물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로 더 충격적이고 잔혹하게 느낀다. 요즘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철학>을 아주 조금씩 읽고 있는데, 그곳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눈앞의 아이가 물에 빠져 있다면 기꺼이 뛰어들어 구하지만 지구 반대편의 아이가 굶어죽는데는 적은 돈도 기부하지 못한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고찰하는 글을 읽고 난 후라 마음이 더 싱숭생숭해졌다.





사실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어떤 묘사는 지나쳤고, 어떤 건 거짓이 섞여 있었고, 어떤 건 사실과 구분할 수 없었다. 사실이 중요할까도 싶었다. 관통당한 몸에 온전한 무언가가 남아있을리 없다. 망가진 채로, 망가진 모양 그대로 기록하려는 이 책이 그래서 소중했다.

하지만 이 기록조차 그들에게 또다른 폭력은 아닌지 고민하는 저자의 생각이 읽는 내내 마음을 괴롭게 했다.

한국전쟁을 겪은 할머니는, 부모의 죽음을 귀로 들었다. 쌀 뒤주에 숨어 부모를 앗아가는 총소리를 듣고 사나흘을 숨어 있었다고 했다. 그 전후의 기억은 온전치 않다. 끔찍한 이야기들의 전후는 가끔 앞뒤가 맞지 않고 흐릿하다.




언젠가 여성들이 회복할 수 있을까요? 내가 그에게 물었다.
“저는 아주 많은 여성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만 그 대답은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한 여성이 자기 이야기를 하겠다고 결정할 때 그건 자신이 회복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주체가 되겠다고 말하는 겁니다.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났지만 내 아이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게 놔둘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죠.”
-468p





하지만 그들이 입을 열 때, 변화의 주체가 되기로 마음 먹었을 때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역사의 방관자이기를 거부한 그들의 이야기에 우리는 늘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관통당한 몸을 똑바로 쳐다볼 용기나 있나, 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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