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너무 가보고 싶은 여행지였는데, 괴담이 많아서 선뜻 도전하지 못했다. 유럽 여행을 같이 다녀온 친구와 인도도 같이 떠나자고 했지만 그것도 벌써 10년 전 일이다.
이안 감독의 <파이 이야기>를 보며 인도에 대한 환상은 더 커져 갔다. 무교지만 불교(의 교리)를 좋아하는데, 아마 절에 다녀본 적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초등부부터 고등부까지 꽤 오래 교회를 다녔는데 교리처럼 살 생각이 1도 없어 보이는 인간들에 환멸이 나서 멀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인도에서 20년 간 살다 온 불교철학자가 소개하는 인도의 모습이 궁금했는데 작가가 선배에게 들은 얘기라며 적어 놓은 문구가 책을 읽는 내내 맴돌았다.
인도를 일주일만 다녀오면 매 순간을 기억하고, 한 달을 다녀오면 중요한 모습만 기억하고, 1년을 다녀오면 인도를 다녀왔는지도 잊어버린다.
책을 덮을 즈음에는 주어를 어느 곳으로 바꾸어도 상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낯선 곳에 가면 익숙하지 않은 것에만 집중하게 되는데, 기실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하니 내가 그곳을 타자화하지 않으면 인도라고 다를 것이 있겠냐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도 여행은 가고 싶어. 인도, 티벳, 쿤밍 갈 거야!)
그래서 이 책은 인도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작가가 인도라고 생각한 것, 즉 인도에서 경험한 불교 이야기에 가깝다. 그래서 책을 읽는동안 인도와 불교에 해박한 가이드와 함께 인도 구경을 하는 것 같았다. 팬데믹 이후로 이런 감각은 정말 소중하다. 그 전에는 책이 안전한 모험이고, 세상을 간접경험하게 해준다는 말을 들어도 ‘직접 가보면 되지 굳이?’라며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제는 갓 나온 새책에서 흙먼지 냄새를 맡을 정도로 다른 세계를 궁금해 하다니.
책은 인도, 티벳, 무스탕, 투르크로 섹션을 나누는데, 이방인들이 발음을 잘못 표기한 지명 소개도 있어서 해당 지역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지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불교용어나 역사 이야기도 자주 나오는데, 사실 불교 교리를 좋아할 뿐이지 불교를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는 조금 어려운 내용도 있었다.
티벳 불교에서는 1) 작-행-요가-무극상요가라는 4종의 딴뜨라, 즉 4종의 밀교의 구분법을 쓰는데 이것은 일상의 생활을 관통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작행요가-무극상요가’로 줄일 수 있는 이것의 작은 산스끄리뜨어 어원 ‘끄르kr’에서 온 것으로 무언가를 하는 일반적인 행위를 뜻하고 2)행은 산스끄리뜨어 어원 ‘짜르car’에서 온 것으로 예식 행위를 뜻한다. 95p
그렇다고 모든 불교용어에 주석을 달 수도 없으니 그냥 찬찬히 읽으면서 어렴풋이 의미만 짐작해 봤다. 딴뜨라 같은 낯선 용어 앞에서는 한글도 외국어처럼 보인다.

티벳은 곡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육식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한 티벳 스님은 달걀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티벳 속담에 ‘잡으려면 야크를 잡아라’라는 게 있다는데, 살생할 수밖에 없다면 작은 것 여러개보다는 큰 것 하나를 잡아 불필요한 살생은 줄인다는 의미라고 한다. 비건지향 페스코테리언이 되어 채식을 하면서 나는 그저 고기 안 먹기 챌린지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다른 동물이 들어간 고양이 사료를 구매하고 가족이나 친구들을 위해 고기를 사서 직접 요리하는 때도 있기 때문이다. 내 눈 앞에서만 죽(이)지 않으면 되고 고기가 내 입에만 안 들어오면 되는 건가 싶어서 이게 내가 바라는 채식의 삶인가, 생각하다가 현타가 올 때가 있었다. 그래서 불필요한 살생을 줄인다는 말이 크게 공감이 되었다.
이미 완벽한 채식을 하긴 글렀지만 다시 한번 휘뚜루마뚜루 채식을 결심하고!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아좌좌! ㅋㅋㅋ
물론 재밌는 이야기도 많다. ‘자신을 등불로 삼고 의지하며, 진리를 등불로 삼고 의지하라’는 뜻의 ‘자등명 법등명(自燈明法燈明)’은 석가의 유언으로 유명한데 석가가 죽기 전의 일화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시주를 받는 수행자는 주는 음식을 가려 먹을 수 없는데, 석가는 어느 날 음식을 받고서 자신을 20년 간 따른 아난 존자에게 그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한다. 그럼 아난 존자는 굶어야하는데요? 너무 쪼잔한 일화라 다들 쉬쉬하는 건가 했더니, 그 음식이 상했을 거란 해석이 있다. 상한 줄 알지만 받은 음식은 먹어야 하기에 석가 혼자 음식을 처리하고 몸이 상해 결국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죽기 전에 남긴 말이라니 또 새롭게 들린다. 나를 등불로 삼으라는 말이 좋았는데,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를 믿고 가라며 등을 두드려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일화를 듣고 나니 음식을 준 이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다는 말로도 들린다.
불교철학자의 눈으로 본 인도가 꽤 재미났다. 챕터마다 글도 짧아서 읽기도 편하고 모르는 내용은 이해 못한 채로 넘어가도 나쁘지 않다. 직접 본다고 다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오히려 이런 게 더 생생한 여행 같은 느낌이 든다.
그나저나 읽고 나니까 정말 여행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