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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dde님의 서재
  • 모두를 위한 게임 취급 설명서
  • 최태섭
  • 14,400원 (10%800)
  • 2021-11-08
  • : 152





<한국, 남자>를 쓴 최태섭 작가의 신작. 게임 산업이라 하면 규제, 노동자 이슈와 여혐 문제 등 여러 개의 키워드가 한 번에 떠오른다. 게임이 진짜 문제일까? (그럴 리가 없지.)



게임을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곰곰히 되짚어보니 나도 게임을 굉장히 좋아했다.






한때 컴퓨터에 기본으로 깔려있던 고인돌을 좋아했으며 (고인물 아님)



친구와 크레이지아케이드를 하던 시절도 있었고, 바람의 나라에서 열심히 도토리를 줍던 때도 있었다. 티끌 모아 비싼 갑옷 사놓고 레벨이 안되어서 못 입고 있었는데, 길드원에서 배신 당하고(킬 당함) 갑옷을 뺏긴 뒤로 온라인 게임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다행인가.)



한때 CD 게임이 유행할 땐 쥬타이쿤과 롤러코스터 타이쿤도 했었고, 쇼미더머니의 스펠링을 외우게 만든 스타크래프트나 양육과는 전혀 관계 없는 육성 시뮬레이션 프린세스 메이커도 좋아했다.



휴대폰이 생긴 뒤로는 각종 타이쿤의 제왕이 되었다. 생과일 타이쿤, 붕어빵 타이쿤, 짜요짜요(젖소 키워서 우유파는 타이쿤), 편의점 타이쿤 등. 폰 게임으로는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는 것 같다. (왜 게임에서도 프롤레타리아를 벗어나지 못한 건지.)



꾸준히 오락실의 하우스 오브 데드를 좋아했는데(좀비 총살 게임), 고등학교 때는 뒤늦게 펌프에 빠져서 담임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야자 시간에 오락실에 간 적도 있었다.


그리고 폰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에 영혼을 팔았다. 지인들이랑 길드까지 만들어서 약 3년을 열심히 키웠는데, 무과금 유저는 손가락 관절을 갈아넣어야 키울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서 지금은 하지 않고 있다. 약탈하는 것도 재밌고, 일본 길드랑 붙을 때마다 질 수 없다며 다들 진심이 되는 것도 재밌었는데...


최근에는 동생이 산 닌텐도로 동물의 숲이나 낚시 게임 같은 걸 하기도 했다. 아, 사실 나는 엄청난 게임쟁이었구나...?!






PC, 콘솔, 스마트폰 등 다양한 기기를 거쳐 게임을 즐기기는 했지만 정작 유명한 롤이나 오버워치 같은 게임은 해본 적이 없다.

'모두'를 위한 게임 설명서라는 제목에 걸맞게 게임 산업과, 시장, 게이머, 노동자 등 게임과 연관된 다양한 키워드를 설명하는데, 게임학개론 같은 느낌도 들었다. 전공은 아니고 교양 수업 같은. 게임 산업에 대해 전반적으로 훑기에 좋았다. 전혀 게임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한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4장 때문이었다. 본격적으로 게임과 얽힌 이슈를 풀어주는 장이기도 하고 게임에 갖고 있는 오해를 풀어주는 장이기도 하다.

성우가 Girls Do not need a prince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그가 메갈리아(나는 아직도 이 집단의 정체를 모르겠다. 너무 온갖 이슈에 소환되는데 실체를 본 적이 없어서 관념 속의 커뮤니티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라며 남성 유저들이 항의한 일이 있었다. 결국 그 성우의 분량은 삭제됐다. 소설 <1984> 속 세상도 아니고 21세기에 사상 검증이라니, 당시에도 믿을 수 없었지만 지금도 아리송하다.

'혜지'라는 단어는 특정 여성의 이름이 아니었다. 너 왜 이렇게 여자 같냐, 라는 말을 보다 구체적이고 모욕적으로 쓰기 위해 채택한 이름이었다는 게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게임하는 '일부' 남성이 문제라는 건가, 게임업계가 문제인가? 싶었는데, 잘못된 질문이었다.


이것이 다 게임 탓이라는 것은 사실 앞뒤가 바뀐 말이다. 오히려 세상이 게임에 반영되고 있다. 현실의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현실의 스트레스와 분노가, 현실의 능력주의와 약강강약의 비열함이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다는 사이버 세상 속에서도 그 지긋지긋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다. 오늘날 게임과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에 그다지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게임에는 그럴 수 있는 잠재력이 있고, 이미 그런 잠재력을 보여준 많은 게임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게임에 세상이 반영되고 있다는 당연한 말이 새삼스럽게 소름 끼쳤다. 범죄에도 세상이 반영된다. '묻지마 살인 사건'이라고 불리는 여성혐오 범죄가 얼마나 많았던가. 게임 속 세상만 정의로울 까닭이 없지. 오히려 가상의 세계이기에 더 필터링 없는 생각들이 오고 간다고 생각하자 머리털이 쭈뼛 섰다. 조금 암담하기도 했다.

책 도입부에서 게임과 문화로서의 게임에 대해 정의 내리면서 게임이라는 장르를 설명하는데, 게임은 현실과 마찬가지로 '상호작용'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영화 같은 영상매체에서도 시도되지만 게임처럼 높은 상호작용을 일으키긴 어렵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게임을 하면서 현실과 똑같이 공과금을 내고 9 to 6로 출퇴근을 하지는 않는다. 게이머들은 상호작용과 더불어 '재미'라는 목적을 공유하는데, 지금이 그 재미의 정의를 다시 내릴 때가 아닌가 싶었다.

게임은 게임이다. 그것을 잊으면 안된다.




*한겨레출판 서평단 1기 하니포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게이머를 소수라고 칭하는 것은 여러모로 멋쩍은 일이다. 그리고 게이머라는 말만으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도 어렵다. 결국 어떤 게임을 어떻게 즐기고 있는지를 알아야 우리는 그가 어떤 게이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또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것은 딱히 아니다.

여전히 젊은 남성이 가장 많지만 여성도, 중장년도 적지 않다. 이 조사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게이머는 장애인, 혼혈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빈곤층일 수도 있다. 게임을 하면서 호구조사를 할 일은 거의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게이머가 어떤 사람일 거라고 쉽게 넘겨짚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게이머는 그야말로 ‘아무나‘이기 때문이다.- P115
전 세계의 언론과 종교계, 교육계, 학부모에게 게임은 아이를 망치는 주적처럼 인식되어왔다.

여기에는 게임이 갖고 있던 편리한 특성들이 있다. 역사가 짧았던 게임은 젊은 층에서 주로 즐기고 기성세대들은 그게 뭔지 잘 모르는 ‘세대구분적인 취미‘였기 때문이다. 잘 모르기 때문에 쉽게 악마화할 수 있다는 것은 사회적 혐오를 연구하는 많은 연구자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바다.- P182
여성 캐릭터들이 모조리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끈이나 천 쪼가리 같은 것을 옷 대신 걸치고 등장하는 게임에 대해서도 ‘네가 예민한 것일 뿐‘이라고 퉁치고 넘어가면 되는 것일까? 또 할리우드 영화가 백인이 아닌 사람들을 비열한 방식으로 정형화하는 것이 문제라면, 게임에서 묘사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P184
남초커뮤니티의 일부 이용자들은 "허버허버가 특별히 남혐단어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여초에서도 ‘보이루‘를 가지고 똑같이 우겼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식의 주장을 펴기도 했다.- P218
젊은 (이성애자) 여성은 이성애자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다. 게다가 게임하는 여자는 특별한 존재다. 앞서 말했듯이 여성이란 일반적으로 게임을 못마땅해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와 같은) 게임을 하는 여성이라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나를 이해해줄 가능성이 있다. 게임하는 여성은 이렇게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유혹적인, 그리고 유혹하는 존재가 된다. 동시에 이것은 여성의 게임실력을 의심하는 새로운 근거가 된다. 여성은 ‘남자친구‘를 따라서 게임을 시작했거나 아니면 자신을 떠받들어주는 ‘보빨러‘들에게 업혀서 쉽게 등급을 올렸을 것이므로 그들은 게임을 잘 할 리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여성의 입장이 단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음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P223
<오버워치>와는 다르게 음성채팅이 존재하지 않는 <리그 오브 레전드>는 다른 사람의 성별을 식별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하지만 인터뷰에 참여한 남성 게이머들은 자신들이 ‘혜지‘를 식별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사용하는 챔피언의 외형이나 성별, 움직임과 전투 방식에서의 ‘여성스러운‘ 플레이 스타일 등이 단서라고 주장했다. (중략) 이는 감식안이 별 의미가 없음을 입증하는 것은 물론이고, ‘혜지‘가 게임을 못하는 서포터를 ‘여성화‘해 모욕하는 것일 따름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나아가 여성게이머에 대한 모욕을 넘어서, 게임을 빌미로 남성들이 여성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것 자체를 하등한 것으로 여기고 있음을 고백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P229
이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함의는 여성 게이머에 대한 그 수많은 말들은 모두 실제의 여성 게이머가 아니라 그저 남성 게이머들이 믿고 싶은 것을 떠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 리는 없겠지만, 이렇게 지칭하는 단어까지 만들어내면서 떠들어댈 만큼 존재하는지를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게다가 아마도 현실에서 ‘혜지‘보다는 훨씬 많이 존재할 <롤>을 잘하는 동성 친구의 캐리를 받아 티어를 올리는 남성 게이머들을 지칭하는 단어는 없으며, 이들은 친구를 잘 만났다는 우연 때문에 높은 티어를 얻었음에도 공정성을 해치는 이들로 지목 당하지 않았다.- P231
이것이 다 게임 탓이라는 것은 사실 앞뒤가 바뀐 말이다. 오히려 세상이 게임에 반영되고 있다. 현실의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현실의 스트레스와 분노가, 현실의 능력주의와 약강강약의 비열함이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다는 사이버 세상 속에서도 그 지긋지긋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다. 오늘날 게임과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에 그다지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게임에는 그럴 수 있는 잠재력이 있고, 이미 그런 잠재력을 보여준 많은 게임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P235
몇 겹의 아이러니 속에서 산업이자, 예술이자, 놀이이자, 매체로서의 게임이 존재한다. 게임은 우리에게 현실을 버텨낼 수 있는 즐거움과,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상상력을 준다. 예기치 못한 인연과, 작은 승리들의 기쁨도 준다. 하지만 이것을 마음 편히 즐기려면 게임이 게임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게임이 몰입의 핑계를 대면서 은근슬쩍 사람들의 삶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재미라는 핑계를 대면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인류의 긴급한 퀘스트에 역행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중략)

게임은 게임이다. 그것을 잊으면 안된다.-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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