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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dde님의 서재
  • 한낮의 어둠
  • 율리아 에브너
  • 15,300원 (10%850)
  • 2021-10-29
  • : 1,517

90년대생 저자나 감독을 볼 때마다 놀라는 짓을 그만두고 싶다. 이번이 마지막이길.





91년생 정치학자 율리아 에브너가 서문에 '이 책의 목표는 디지털 극단주의 운동의 사회적 차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밝혔듯이 저자 본인이 극단주의 집단에 잠입 취재 수기를 책으로 엮었다.




언시를 준비할 때, 욕하기 전에 그 집단을 관찰해 보라는 말을 듣고 극우로 유명한 커뮤니티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더라, 하는 말과 눈 앞에서 (물론 모니터 너머였지만)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건 너무 다른 일이었다. 한 페이지를 다 살펴보지도 못하고 토기를 느끼며 인터넷 창을 닫았다. (일단 너무 상스러운 말이 가득해서 진입장벽이 높았다.) 그런데 실물로 그들을 마주한다니. 너무 역겹지 않을까?






하지만 책에 나오는 극단주의 일원들은 겉으로는 모두 멀쩡해보인다. 그러니까 (보진 않았지만) <조커>처럼 불우한 과거를 가지고 있거나 음침해보이거나 햇볕을 보면 살갗이 타는 은둔자 스타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1장에서 소개된 '세대정체성'은 젊고 교육 수준이 높고(낮은 사람도 받지만 그들이 주가 되면 안된다고 말한다), 내부에서 따로 교양 교육을 시킬 정도로 철저하다.



그런 것 치고는 이들은 갖고 있는 공포는 순진하게 느껴지는데, '백인 말살' 정책이 행해진다고 믿고 있고 그래서 낙태와 동성애를 척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음...




이들의 도발적 퍼포먼스를 담은 게시물과 트윗은 순식간에 퍼져 나가 핵심 소셜미디어의 유명인사들에게 공유되었다. 이게 바로 '통제된 도발'이다. 이렇게 되면 전통적인 미디어 매체는 이들의 활동을 보도하며 이들에게 플랫폼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




전문 용어로 어그로?!



이들의 목표는 분열을 초래하는 콘텐츠를 퍼뜨려 중립을 취하는 모든 사람이 어느 한쪽을 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전략적 양극화'다.





책에 나오는 극단주의 사례는 (당연하지만) 백인 중심이라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다. 극우들이 '전세계가 백인을 주목해!' 마인드가 너무 강해서 뭔가 전의를 상실하게 됨. Ok Bye...



그럼에도 백인 유모어에 자존심 상하게 웃긴 지점이 있었는데...




'백인' 애인을 만드는 데이팅 앱 사이트 이름 중 하나인 '트럼프싱글즈'. "데이트를 다시 위대하게"라니. 웃다 울었다. 자존심 상해.







히틀러랑 니체가 가상의 대화에서 싸우는 대목. 가상의 히틀러 나를 피식하게 만들다니. 진짜 자존심 상하네.





네오나치들이 뉴발란스 신는다는 것도 너무 웃겼다. (웃기면 안되는데) 쓸데 없는 기호에 혼자 의미부여하고 심각해지는 건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구나.






학부시절 전국 대학생들을 데리고 하는 토론 엠티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무슨 대학 지부라는 단체였고, 어디서 그 활동을 알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참가비가 거의 없다는 점이 계속 의심스러웠다. 콘도는 나쁘지 않았고, 식사도 잘 나왔고 간식과 밤에 마실 술도 넉넉했다. (물론 저는 술은 못 마시고 무서운 얘기하다가 귀 막고 엉엉 울어서 방으로 쫓겨났읍니다) 연사로는 큰 일간지의 논설위원이 왔었는데, 임의로 나눈 조 활동에서 우리에게 당시 이슈가 되던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결과를 제출하라고 했다.



진지하게 토론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몇몇은 의문을 제기했다. 활동을 뒷받침하는 돈의 출처가 어디냐는 거다. 이건 논의할 거리가 아니라는 말도 나왔다. 나는 옆에 앉은 언니랑 필담으로 이상하다는 말을 몇 마디 주고 받았다. 조장은 어떤 의견을 내든 상관 없다고 했고 순수한 단체라는 말을 반복했지만 이상해진 분위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연사의 이름과 그가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일간에서 퍼뜨리는 온난화는 낭설이라며, 컵에 물을 가득 담아보면 알겠지만 표면 장력이 생겨 물이 넘치지 않는다고 했다. 빙하가 녹아도 대지가 잠기지 않는 근거로 그는 표면장력을 들었다. 이렇게 세세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걸 필기해 뒀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여전히 칼럼을 쓰고 있다니.



돌아와서도 그 단체의 정체가 종종 궁금했는데, 여전히 모르겠고 지금은 어느 커뮤니티에 잠입해 활동하지 않을까 싶어졌다.









친구 수가 많을수록 접하는 콘텐츠의 다양성이 줄어든다는 페이스북 모순은 확증편향이라는 말로 온갖 플랫폼에 갖다 붙일 수 있다. 아주 개인적인 통계이지만 어떤 콘텐츠를 접하는 시간이 길수록 더 편향적이 되는 것도 같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이유로 만나기 피곤해졌다. 대체 뭘 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문 일이다. 그러나 집단, 당파, 민족, 시대에는 늘 있는 일이다.



사실 집단주의에 대한 분석이 궁금해서 선택한 책이었는데, 다양한 극단주의 집단에 대한 사례가 더 많고 내가 궁금했던 부분은 거의 마지막장에 서술돼 있어서 분량이 조금 아쉬웠다.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 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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