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두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벌써 8년이나 되었다. 내가 호텔 아프리카를 처음 보았을 때는 중2 때였고 감수성이 예민하던 한 소년이 읽기에는 이 만화가 좀 진지했다. 다시 이 만화책을 접어들었을 때는 재작년 때였고, 그때는 이미 소년의 감수성이 무척 메말라 버린 때였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집어들었다. 벌써 22살이라는 나이에, 다른 친구들이 보면 비웃었을, 순정 만화라고 딱지 붙은 이 만화책을 펴들며 다시 한번 옛날의 열정에 휩싸인다.

호텔아프리카는 복잡한 옴니버스이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고 이야기가 반드시 보통의 서사형식을 따르는 것도 아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오히려 만화라기 보다는 시고, 차라리 풍경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호텔 아프리카를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일종의 서정시라고 부르고 싶다. 그래 이것은 오히려 따뜻한 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노래하는 이것은 시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각각의 고민을 안고가는 고독한 사람들이다. 그것은 가끔 사랑의 문제이기도 하고(여기에서 나오는 수많은 사랑들 에드가 못 잊어하는 죽은 동성의 애인 이안, 에드를 좋아하는 쥴라이, 호텔 아프리카의 여주인인 주인공 엘비스의 엄마인 에드리안과 묘한 인디언 숙박객 지요와의 사랑, 그리고 엘비스의 기억속에 나오는 수많은 사랑들), 그리고 어떤 때는 개개인이 부딪히는 사회와의 갈등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인물들의 갈등과 고뇌를 차분히 바라본다. 그것은 성급하지도 않고, 너무 안이하지도 않은 조용한 관조이다. 이 작품의 부제인 꿈을 찾는 물빛 사람들의 이야기란 말처럼 이 만화의 시선도 따뜻하고 투명한 물빛 같다.

이런 고민에 휩싸인 여러 인물들은 각각 그 문제를 나름대로 대처 해결해 나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많은 방식들은 그들은 과거에서 찾는다. 이 이야기의 반을 차지하는 호텔아프리카도 엘비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과거이고, 쥴라이도 그녀의 유모인 나오미와의 추억, 에드처럼 죽어버린 첫사랑에 대한 기억처럼. 혹자는 이 작품이 그래서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하거나, 현실 도피적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텔아프리카의 과거는 그런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밝고 희망찬 것이다.

여기에서 과거는 따뜻하고 행복했던 우리의 시절들로 우리의 고달픈 현재에 힘을 실어주는 존재이다. 이런 각각의 개인이 가지고 있는 행복했던 기억들로 우리는 현재의 힘든 현실의 나름대로 대처 방법을 마련해 나간다. 나는 이 만화가 계속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떠오르게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소설처럼 이 만화도 우리의 가장 소중했던 시절들을 상기시킨다. 분명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계속 그리워지는 것은 왜 일까? 오늘 더더욱 내 마음속의 호텔 아프리카가 더욱 더 가보고 싶어진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