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은?
요즈음 난데없이 <오디세이아>가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물론 ‘난데없이’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 그동안 그리스로마 신화, 그리고 호메로스에 대한 꾸준한 열기가 이어져 왔었는데, 이번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개봉하면서 거기에 불을 붙인 격이 되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오디세이아>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나고 있다.
지인들과의 대화만 해도 그렇다. 나도 다행하게도 아이맥스로 그 영화를 보았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대화에도 끼지 못할뻔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천병희 역'으로 읽은 적이 있다.
그 후에도 이것저것 <오디세이아>를 읽기도 하고, 또 최근에 <오디세이아> 열풍이 시작된 후 출판된 책도 읽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어떤 이유일까?
맨처음에는 제목에 끌렸다. <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그 제목을 보는 순간 어떤 감이 왔다고 할까, 읽고 싶은 어떤 끌림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직감은 맞았다. 읽기를 잘한 것이다.
마치 호메로스가 속마음을 토로한 것처럼
이 책을 읽어가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것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명시되어 있지 않고, 그저 ‘호메로스’라 표기되어 있는데, 그게?
그게 묘하게 호메로스가 저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호메로스는 항간에 떠도는 오디세우스 이야기를 수집해서, 기록해서 <오디세이아>를 펴냈고, 그 다음에 이 책을 쓴 게 아닐까?
마치 이런 생각으로 말이다.
나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아>를 쓰면서 그 속에 들어있는 의미를 말할 기회가 없어, 이 책을 씁니다.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에 일어났던 사건들, 그 속에 들어있는 의미를 말하고 싶어, 이 책을 씁니다.
그러니까. 이책은 진짜 호메로스가 쓴 것이 맞다. <오디세이아>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면서 하나 하나 그 사건들을 복기하면서 거기에 의미를 드러내놓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반대의 목소리를 꺼내보고 싶었다. 부드럽지 않고 다정하지도 않고 때로는 잔혹한 목소리, 그게 바로 오디세이아를 거쳐 나오는 호메로스의 목소리라고 나는 느낀다. (7쪽)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시작하며, 독자에게 낭만적인 위안을 건네지 않기로 결심했다. (8쪽)
이게 바로 호메로스의 목소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책은 거대한 아포리즘이다.
위에 말한 것처럼 저자는 마치 호메로스같다. 냉혹한 전달자가 되어, 우리에게 진실을, 아니 진실 너머 진실을 날것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해서 글자 하나 하나가 모두, 문장 하나 하나가 모두 거대한 아포리즘이다.
세계는 정의로운 보상을 주지 않는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 반드시 부러진다. (7쪽)
이 말, 그저 하는 게 아닐 것이다.
<오디세이아>의 모든 부분에서 이 말은 빛을 발한다. 이런 사실을 명심하고 우리가 오디세우스의 행적을 따라가보면 그간 읽었던 <오디세이아>가 새롭게 보일 것이다.
<오디세이아>를 읽다보면 오디세우스가 신을 자주 만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런 신들, 현대적 상황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저자는 간단하게 정의한다. 신이란?
여기서 신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의 이름이다. (10쪽)
망각의 열매와 관련하여.
우리는 마지막으로 언제 타인의 시선이나 세속적 대가없이 순수하게 생의 목적에 몰두해 보았는가.
마지막으로 언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떤 책을 읽거나 어떤 것을 만들어보았는가. (66쪽)
키클롭스 앞에서, ‘아무도 아니다’라고 이름을 말한 것.
그때 자신이 어디서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라고 외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이름표는 거인의 이빨 사이로 함께 들어가 사라질 뿐이다. 오디세우스는 그 사실을 정확히 알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아무도 아닌 자’라고 불렀다. (115쪽)
나는 이 장면을 오래 생각한다.
저자는 어떤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장면을 오래 생각한다.’
이 말을 읽고 오래 생각했다.
나는 <오디세이아>를 읽으면서 어느 사건, 어떤 장면을 그렇게 오래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그저 줄거리 파악에 급급하느라, 그 의미를 새겨본 적이 없었던 것을, 발견했다.
그것 역시 이 책에서 얻은 큰 교훈이다.
오디세우스의 행적을 하나하나 오래 생각하자고.
다시, 이 책은?
<오디세이아>를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우리 독서계에서는 <오디세이아>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가?
요즘 정말로 <오디세이아> 열풍이어서 웬만한 지식인들은 <오디세이아>에 한마디씩 말을 더한다. 그런 말들, 지천이어서 옥석을 구분하기 정말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질적으로 다르다.
어쭙잖은 위로의 말, 처세술, 인생에 도움이 되는 도덕군자 같은 교훈의 말 사양한다. 애초부터 저자는 그럴 생각이 없다.
그러면서 당부한다.
아주 단단하게 몇 가지를 챙겨서 인생이란 배에 오르라고 한다.
자신에게 정직할 용기,
파도를 원망하지 않을 마음,
그리고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자신의 이타카,
우리는 지금부터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첫 노를 젓기에, 오늘만큼 좋은 날은 없다. (11쪽)
<오디세이아>를 쓴 호메로스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