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대연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은?
소설집이다. 표제작 <존재의 대연쇄>를 포함하여 모두 6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이 책에 실린 여섯 편 모두 나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든 작품이다. 다시 말하자면 여섯 편 모두가 나에게는 문제작이다. 좋다는 말이다.
<사랑하는 신의 생일>
어떤 점이 좋았을까?
일단 이 소설의 ‘화자’가 마음에 든다. 보통, 진짜 보통의 남자가 화자로 등장한다,
연애도 잘 하지 못하는 찌질이(?) 로 보이는 현대 우리나라의 그저 평범한 인생이다.
그런데 그가 가진 지식의 범위와 양은, 그야말로 한 편의 소설을 이끌고갈만하다.
하나의 세계관을 가슴 속에 품고 있다.
화자가 현시점의 세계와 로마제국의 세 번째 황제인 칼리굴라를 엮어내는 그 솜씨, 그래서 만들어지는 세계가 자못 흥미롭다.
화자의 이름이 그래서 기억해야할 이름이 되었다. 유하.
게다가 그 이름 유하는 유대교의 유일신인 YHWH 와 동일한 신격으로 간주되었다는 설정도 이 소설의 격을 높인다. 그냥 시간때우기 용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해서 이 소설 <사랑하는 신의 생일>을 읽을 때에는 가지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읽어야 한다, 행간까지 살펴보면서, 화자가 말하는 바를 잘 따라가야 한다.
로마 제국의 역사 : 제 3대 황제 칼리굴라와 그 주변의 인물들
그리스, 로마의 신들 : 유피테르, 넵투누스, 아폴로, 풀루토, 베스타
서기 38년과 40년 경의 알렉산드리아 상황, 특히 종교문제와 관련하여.
문제적 소설 <존재의 대연쇄>
이 소설은 정말 문제적이다.
먼저 소설가란 직업이 상상력을 얼마까지 발휘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는 머리를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어떻게 이런 작품을 구상할 수 있을까?
신의 말씀을 컴퓨터 명령어로 치환할 생각을 하다니. 이건 희대의 발명이다.
컴퓨터과학과 신학을 연결하여, 독자들을 다른 세계로 인도해나간다.
그럴듯한 설정이다. 컴퓨터 관련 지식에 무지한 관계로 그런 서술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게 유감일 정도다.
해서 그 다음에 이어지는 <격자 공간 제어 지침서>는 꼭 읽어야만 한다. 컴퓨터 관련 지식도 넓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들에 대하여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와 <존재의 대연쇄>는 두 사람의 대화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에서는 송전망을 관리하는 기술직 사무관과 그의 친구간에 전화 대화가 이루어지면서 소설이 진행된다.
화자의 친구 또한 종교역사학 연구자다. 따라서 둘 간의 대화는 형이상학이 될 수밖에 없고 대화는 간학문적 연구(118쪽) 보고서와 다름이 없을 정도다.
<존재의 대연쇄>에서는 화자와 화자의 친구 피에르 간에 대화가 소설을 이끌어간다.
피에르는 가톨릭 신학대에서 3년을, 총신대 신학과에서 3년을 수학하고 그만둔 종교인(?)이다.
현재는 건설현장에서 타국의 전문가들과 비정기적으로 협업을 하고 있다. (216쪽)
그런 친구와의 대화가 경계없이 지상과 천상을 넘나들며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걸 글로 읽는 독자들은 그들이 그려내는 세계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피에르의 말을 조금만 인용하자.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라, 기록하고 싶어진다.
220쪽에서 221쪽에 있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이질성에 관한 기록이다.
구약의 유대인들이 이해했던 영혼은 기독교인들이 아는 영혼과 다르다.
영혼을 의미하는 히브리 단어는 총체적인 생명력과 영적 관계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몸과 독립된 실체는 아니다. (221쪽)
그런데 기독교의 영혼관은 정반대다. 죽음 이후에도 영혼은 남는다, 그 영혼은 몸과 별개이다, (221쪽)
이런 이야기. 흥미롭지 않은가?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어가면서 좀더 깊은 영적인 세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해서 이 책에는 생각할 거리가 도처에 있다
그 중 몇 개 간추려본다.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손바닥 한 뼘 크기로 줄어든 나폴리를 보자니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신의 눈에는 이토록 하찮겠구나 싶었다. (28쪽)
삶을 매 순간 의식할 만큼 죽음에 가까워진 상태로.....(32쪽)
금방 녹아내릴 물건들, 대장장이의 솜씨에 따라 반지도 귀걸이도 될 수 있는 것들이 지금 여기에서만큼은 신의 위광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기묘하게만 느껴졌다. (47쪽)
심지어 세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신을 만들어내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47쪽)
믿음은 실체가 없으므로 공허했고, 공허를 메우기 위해서는 더많은 믿음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91쪽)
기린은 멀리서 보면 뿌리로 땅을 딛고 선 나무 같다. 날카로운 송곳니도 거대한 상아도 매달지 않고 그 높이만으로 모두를 고고하게 굽어보는 나무, (100쪽)
대기 순환 패턴을 조작함으로써 상대국의 영토를 사막으로 바꾸어놓는 전략무기가 있었다. (121쪽)
다시, 이 책은?
이 책 첫 번째 소설, <사랑하는 신의 생일>을 읽고 나는 이 책의 저자 단요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 독서의 범위가 그동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모양으로, 이런 소설을 쓴 작가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이제부터 작가 단요를 관심 작가로, 애정하는 작가의 반열에 두기로 한다!
이 책, 단요의 소설집은 줄거리를 통해서 독자들을 매혹하는 것이 아니라, 줄거리를 생성해가는 과정에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 묵직하다. 생각으로 묵직하다.
독자들은 이 책으로 인해 분명 ‘생각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