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괴물의 시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은?
소설집이다. 단편 소설집.
이 책에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비롯해 모두 8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그리스 신화의 완벽한 해설
그리스 신화에 미노타우루스 신화가 있다.
미궁, 또는 미로의 근원이 되는 신화다.
그 신화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과연 이 신화에는 어떤 기본 이야기(설화)가 있을까?
무언가 있었을 것이다. 그 신화의 저변에는 어떤 사건이 구전으로 떠돌다가 이윽고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 신화가 되는 과정이 있었을 것인데, 미노타우루스는 어떤 이야기가 밑바탕이 되었을까.
그것이 알고 싶었다. 궁금했었다.
다른 신화의 스토리, 예컨대 영웅이나 신들의 이야기는 힘이 센 인간들이 소문이 나고 그들의 영웅담이 전해지다보니, 그들을 신격화하게 되고, 이윽고 영웅 또는 신의 자리에 올라서게 되었다는 신화 형성의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미노타우루스 신화는,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먼저 그리스 신화 미노타우루스 등장인물을 알아보자.
미노스 : 아버지
파시파에 : 어머니
미노타우루스 : 아들
황소 : (파시파에와 교접했다고 전해지는 황소)
다이달로스 : 미로를 만든 장인
이카로스 : 다이달로스의 아들
자. 이제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이 소설 <어머니의 이야기>와 비교하면서 살펴보자.
이 소설의 첫머리에 화자의 남편과 아들 폴이 등장한다.
남편이 전갈을 해서 화자인 아내를 부르는데, 그 용건을 화자는 이미 알고 있다.
바로 아들 폴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이 되는데, 아들 폴은 보통 인간이 아니라, 남편의 말에 의하면 백치였다. (14쪽) 또한 이런 말을 덧붙인다.
흉측한 괴물, 인간과 원숭이, 또 뭔지 모를 뭔가가 섞여 있다고 말한다. (14쪽)
그러나 아내 눈에는 그저 사내아이일뿐이었다.
아내가 오자, 남편은 설비기사와 그의 아들을 불러온다.
그들을 부른 용건은?
아들을 가둘 시설을 만들라는 것, 이것은 신화의 미로에 해당한다.
이쯤 되면 소설의 이야기가 신화의 이야기와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이 소설에서?
신화의 기본이 되는 미노타우루스의 어머니인 파시파에가 황소와 교접을 했다는 이야기는 실로 허황되기 이를데 없는데, 과연 당시에도 사람들은 그것을 믿었을까?
아무리 신화라고 하지만, 황소와 인간 여자가 교접을 해서 황소머리에 사람 몸인 괴물이 탄생할 수 있을까? 그런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믿었을까?
그런데 그것은 사람들이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 소설에서 설비 기사는 그 이야기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빨리 퍼트리지 못해 안달하는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17쪽)
이게 바로 신화의 핵심이다.
이렇게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믿음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어 퍼트리는 수순을 밟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가 옮겨지는 과정에 그 이야기가 사실인가 아닌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소설의 전개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신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알 수 있게 된다.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루스 이야기
신화에서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를 미로에 가둔다.
테세우스가 크레테에 와서 미노타우루스를 죽인 다음에 일이다.
미로에 갇힌 부자는 탈출을 위해 밀랍과 깃털로 날개를 만들었고, 하늘로 탈출을 시도했는데. 아버지의 경고를 잊고 태양 가까이 날아간 이카로스는 밀랍이 녹아 바다로 떨어지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이 소설에서 설비기사와 아들 역시 갇히게 되는데, 아들 역시 신화 속의 이카로스와 같은 운명을 맞이한다.
(아들은) 창문에서 겨우 50미터 떨어진 곳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목제 문기둥 위로 떨어져 기둥이 가슴을 뚫었고 목은 부러져 있었다. (........) 그는 버들가지와 밀초. 비둘기 깃털로 만든 날개 한쌍을 달고 있었다. (37쪽)
이게 더 현실적이다. 이게 이카로스 추락 사건의 실제 모습일 것이다. 창문에서 50미터 떨어진 곳에 떨어졌을 것이다. 태양 근처는커녕, 창문에서 100미터에도 못미쳤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 아비는 지금쯤 프랑스 상공을 날고 있겠죠.”(37쪽)
설비기사와 아들의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의 말이지만, 이 소설의 화자인 아내는 이렇게 평한다.
실상은 그렇게 환상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 훨씬 허접했으리라. (37쪽)
그래서 이 소설은 신화 이야기를 실제 사건으로 복기해서 들려준다. 사실은 이렇습니다, 라고.
신화가 형성되는 데 필요한 요건들
궁전 지하에 미로 같은 터널을 만드는 겁니다. (18쪽)
그렇게 해서 지하 감옥이 만들어졌다. (25쪽)
미로가 있다고 소문을 내는 거지요.
그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 사람들이 겁을 먹을 테고, 사람들은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지요. (27쪽)
다시. 이 책은?
특이하게도 그리스 신화가 소재가 되는 작품이 무려 3개 작품인데. <어머니의 이야기>는 물론 <세계의 고요한 경계>와 <개들>이 그것이다.
<세계의 고요한 경계>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등장한다.
그러니 역시 신화를 모티프로 삼은 소설이다. <개들> 역시 그리스 신화가 소재다.
저자는 그런 작업을 거친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의 본질’을 파헤쳐 보여준다.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 전해지는 과정을 흥미롭게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작업은 신화뿐만이 아니라. 소설에도 같은 작업이 필요할 것이고, 그런 과정을 거쳐 독자에게 배달이 되는 것이다. 소설도 신화도 같은 이야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