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률 완역 삼국지 1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다시 읽는다. 삼국지를 다시 읽는다.
어떤 책을 몇 번이나 읽어본 적이 있을까?
아마 많은 책들은 그저 한 번 보고 말 것이다. 물론 다시 읽어도 감동을 주는 책도 있으니, 이 말은 모두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책은 읽고 또 읽어도 물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 그 경우 번역을 달리해서 다른 번역본을 읽어보고 싶어지는 책이 있다.
그게 바로 이 책 <삼국지>다.
어릴 적부터 계산한다면, 또 만화니 영화니 하는 것을 합한다면 적어도 수십 번을 읽었을 것이다. 수십 번, 말이 수십 번이니 같은 책을 그렇게 많이 읽어도 좋은 것인가?
그렇다, 좋다,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 다른 것들을 얻을 수 있기에 이 책 <삼국지>는 몇 번이고 마음을 다해 읽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이 책은 박상률이 옮기고 백남원이 그림을 그려 펴낸 <삼국지>이다.
번역은 이미 20년 전에 펴낸 바 있고, 이번에 손을 보아 다시 펴낸 것이다.
역자는 이에 대하여 <옮긴 이의 말>중 다시 펴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삼국지>의 기본 줄거리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언어의 풍경은 많이 변했다. 그래서 미묘한 언어의 변화를 반영하여 문장을 다듬어서 지금의 독자들이 더 친밀감을 느끼게 했다. (19쪽)
다른 번역본과 무엇이 다른가?
몇 가지 이 책의 특색을 다른 번역본과 비교해 살펴보았다.
첫째, 다른 번역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나 노래가 들어있다.
그간 읽었던 번역본에서는 시나 노래를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들고 읽어가는 중에 무언가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시가 들어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훗날 어떤 사람이 이때의 사정을 한탄하는 시를 지었다.
한나라 기운이 다해 망할 때가 되니
아무 지혜도 없는 하진이 삼공이라네
때마다 충신의 말을 듣지 않았으니
궁중에서 칼 맞는 일을 어찌 피하리! (97쪽)
하태후의 동생인 하진이 정권을 좌지우지하다가 결국은 칼 맞아 죽은 상황을 훗날 어떤 사람이 지었다는 시로, 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에 대하여 역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삼국지>에 들어있는 시나 노래는 사건의 알갱이를 딱 몇 줄로 압축해서 보여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숨 가쁘게 이어진 사건 뒤의 분위기를 모아놓은 경우가 많다. (13쪽)
또하나 있다. 바로 완역본이라는 점이다.
전에 읽었던 이문열의 <삼국지>를 지금 다시 살펴보니, ‘평역’으로 되어 있다.
평역이란 어떤 것일까? 번역은 번역이지만, 번역자가 자신의 해석과 평을 곁들여 재구성하여 번역하는 방식을 말한다. 따라서 원문에 없는 내용을 추가하거나 줄이고 작가의 관점을 반영하여, 대중이 읽기 쉽게 가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문열의 번역과 이 책을 비교해보니, 우선 양적인 면에서 차이가 난다.
유비와 관우, 장비가 황건적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유비의 군사 수가 적어 불가피 물러날 수밖에 없어, ‘적은 많고 우리는 적어서 수로는 당할 수가 없다. 꾀를 내서 적을 혼란에 빠뜨리는 기이한 방법을 써야 이길 수 있겠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 책의 47쪽에서다
그런데 이문열의 평역본에서는 같은 장면이 164쪽에 등장한다.
게다가 이문열본은 판형이 이 책보다 더 크다. 그러니 이문열이 원본에 얼마나 많은 ‘살을 붙였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원래 삼국지를 그대로 번역해 놓은 ’순살‘ 같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삼국지>를 다시 읽어야 할 가장 큰 이유
<삼국지>를 읽는 것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멋진 말을 하고 있다. 뭐, <삼국지>는 젊어서 읽어야 하고 늙어서는 읽지말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삼국지>를 몇 번 읽은 사람과는 상대를 하지 말라는 둥 하여간 말들이 많지만, 분명한 것은 <삼국지>는 수시로 다시 읽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 읽어보자.
황건적이 항복하겠다는 것을 내치는 것에 대하여 유비와 주준의 대화다. (62-63쪽)
옛날에 우리 고조가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될 수 있으면 항복하도록 하고, 또 항복하는 자는 내치지 않았는데 왜 한충이 항복하겠다는 것을 내치는가요?
이에 대한 조준의 대답에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그때는 그때고 이때는 이때이지요.
옛날 진나라 말에는 세상이 어지러워 백성이 누구를 따라야 할지 갈팡질팡했지요. 그래서 항복을 하도록 설득하고, 제발로 걸어 들어오는 자에겐 상까지 주면서 내 편을 만들려고 했지요. 그러나 지금은 천하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데 오로지 황건적만이 대들고 있소.
한마디로 상황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그 전과 지금은 다른 상황이니 다른 논리로 대한다는 말이다. 더 들어보자.
만약에 도적들의 항복을 쉽게 받아주면 바른 일을 권할 명분이 사라지고 맙니다. 힘 있으면 도적질하다가 힘이 약해지면 항복하면 그만이다, 하고 생각할 것 아니오.
자, 이제 그 말의 결론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 어찌 그리 들어맞는 논리인지!
지금 항복을 받아주는 것은 결국 도적질을 권하고 도적들 힘을 길러주는 꼴이 되니 좋은 방법이 아니지요.
다시. 이책은?
예전에 조선시대에서는 관리들을 위해 사가독서라는 제도를 시행했다.
일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일부러 휴가를 주어 시간을 만들어 주어 책을 읽도록 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제도가 지금 다시 시행되었으면 좋을 것이다.
업무에 치우쳐 책 한권 읽지 않고 지내면서 기계적인,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판단을 내리는 관리들에게 이런 글을 읽도록 해서, 시대와 상황의 변화를 감지하도록, 그래서 국민들 보기에 황당한 판결, 정책들이 나오지 않도록 말이다.
이 책 박상률 번역 <삼국지>는 우리에게 그렇게 새로운 통찰을 준다는 것으로 훌륭하다. 완역이 완벽하다는 말은 아니겠지만, 이 책 완역이어서 내용이 제법 완벽하다.